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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Feb 26. 2021

술이나 담배나, 암과의 관계는 도찐개찐


오랜만에 H 선배를 만났다. 위암 수술 후 무탈하게 5년을 넘겼기에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 5년이 될까. 선배는 위암 수술 후 1년이 넘어갈 무렵부터 한잔 두 잔씩 홀짝 거리다가 어느 사이엔가 한 병 넘게 홀짝거리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도 5년을 무사히 넘겼다고 했다. 


WHO 전문가들이 술을 암을 유발하는 물질 1군에 포함시킨 건 알고 있지만, 암에 걸린 사람이 술을 양껏 마시고도 수술 후 5년 넘게 생존했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언 듯 떠오르는 기억 한 조각에는 포도주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와 조금 마시는 술은 약이라는 이야기가 새겨져 있었다. 


 술에 대해 가장 크게 내 마음을 흔들었던 사람은 **한의사였다. 암과 관련하여 사상의학에 이름이 있다는 ** 의원 원장. 그는 체질에 따라 항암치료를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매혹적인 사실을 언급했다. 체질에 따라 소주를 마셔도 되는 암환자가 있다고. 최근까지 진료를 받던 환자는 매일 소주 1병을 비웠다고도 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그와 같은 체질이길 바랐다. 가능하면 그와 만나고도 싶었고.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하지만 그 환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무리하게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암이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렀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소주나 마시면서 살았으면 장수했을 텐데. 암 환자의 사망이야 놀랄 일은 아니었다. 본인의 부주의 탓이겠지, 싶었다. **의원을 의지하고 싶었고, 치료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같이 간 집사람이 원장 말을 의심했다. 한의원에서 들었던 내용을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어머니도 그 한의원에 대해 의문을 품으셨다.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가격이었다. 비쌌다. 잠깐 상담한 비용으로 다른 한의원보다 두배 이상을 요구했으니. 암 투병에 돈 들어갈 데가 어디 한 두 곳이겠는가. 암환자도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강한 희망을 남긴 채, 그 한의원과는 이별했다.


몸인가, 아니면 뇌인가. 둘다 인가. 알코올이 필요하다는 속삭임이 때때로 울리고 있다. ‘한잔쯤이야 어때? 막걸리는 독하지도 않잖아’ 결국 항암이 끝난 1년째 되는 날을 기념하여, 막걸리를 마시기로 마음먹었다. 항암이 끝나고 1년이 다가올 무렵,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알코올의 위험성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WHO가 술을 암 유발물질 1군으로 분류했다지만, 같은 1군에 속한 풀로토늄이나 비소와 같은 수준의 독성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술은 음식이니까. 


WHO-IARC를 뒤적였다. 클릭 클릭을 하다가 2011년 자료를 찾아냈다. 유럽 8개국의 정보를 토대로 추정한 내용이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알코올이 암과 연관되는 퍼센트는 남자는 10%, 여자는 3%이었다. 알코올은 암에 따라 미치는 영향 정도가 다른데, 상부 호기 소화기관(구강암, 인두암, 후두암, 식도암)은 최고 44%, 간은 최고 33%, 대장은 최고 17%, 유방암은 5%의 확률이었다.  간암만 생각했지 소화기관이나 대장, 유방까지는 상상조차 못 했는데. 더하여 퍼센트도 생각보다 높았다. 


출처 : Alcohol and cancer incidence (iarc.fr)


자료 Cancer Research UK

Cancer Research UK 에서는 알코올의 영향이 확실한 7가지의 암에 대하여 알기 쉬운 그림을 제시했다. 그렇지만, 암에 대한 알코올의 영향은 7가지 암 이외에도 위암, 폐암, 췌장암, 피부암 등 다양하다. 이는 World Cancer Research Fund에서 제시한 아래 표를 보면 알 수 있다. 

Alcohol & cancer | World Cancer Research Fund International (wcrf.org)


도대체 알코올이 몸 안에서 무슨 짓을 하길래 이런 암들을 만들어내는 걸까.  DNA를 돌연변이시킬 만큼의 독한 물질이 뭐지? WCRF의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미국 국립 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도 방문했다. 두 곳의 자료를 종합해 본바. 


‘알코올, 즉 에탄올은 독성물질이자 발암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생성한다. 이는 DNA와 단백질 모두를 손상시킨다. 또한 DNA, 단백질, 지방을 손상시킬 수 있는 활성 산소 종(산소를 포함하는 화학 반응성 분자)을 생성한다.  비타민 A, B, C, D, E 및 엽산 카로티노이드 등 영양소를 분해하거나 흡수를 방해하여 암 발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유방암 위험과 관련된 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혈중 농도를 높인다. 알코올은 용매가 되어 담배와 같은 것에 들어 있는 발암물질을 세포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해 준다.’ 요약하자면, 알코올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DNA를 손상시키는 물질이었다. 


발암물질이라도 DNA를 손상시키려면 일정 농도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니 알코올도 허용 가능한 양이 있을 것 같았다. 약술이라는 말도 있는데. 몇 모금 마셔볼 요량으로 WCRF를 찾아봤다. 실망스러웠다.  암 예방을 위해서는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니... 혹시나 싶어 찾은 미국 국립 암연구소는 한 술 더 뜨고 있었다.  알코올이 이차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면서, 1990년부터 2016년까지 195개 국가의 사망 및 장애 기록을 포함한 연구결과에 따른 최적인 알코올 소비량은 1일 0이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술은 입도 대지 말라는 뜻이었다. 


출처 : Alcohol and Cancer Risk Fact Sheet - National Cancer Institute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H 선배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H 선배의 안색이 좋지는 안지만, 알게 된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담배는 암이란 사실을 알기 1년 전부터, 술은 암을 통보받은 날부터 모두 끊었다. 지금은 담배 생각은 거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술 생각은 종종 일어난다. 담배보다 술이 끊기가 힘든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암 환자 또는 암 환자였던 사람들이 술 문화를 핑계로, 아니면 약한 술이면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술을 다시 마시는 게 아닐까.


술병에는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이를 '한잔의 음주라도 구강암, 식도암, 간암, 대장암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로 바꾸는 게 어떨까. 담배만큼 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경고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나 같은 사람이 술병의 경고 문구를 보고, 술을 마시고 싶다는 충동을 조금이라도 내리누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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