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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Feb 28. 2021

소시지, 햄, 소고기, 삼겹살 그리고 암

점심시간에 소시지 반찬이 나왔다. 암을 일으키는 식품이라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두 개를 집어 식판에 옮겼다. 오랜만에 먹는 소시지. 한입을 베어 무는 순간 불안감은 사르르 녹아렸다. 이맛이지. 바로 이맛. 항암도 끝나고 했으니 조금은 먹어도 될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니 눈앞에 삼겹살이 그려졌다.  


나는 소시지만큼이나 삼겹살을 좋아한다. 특히나 김치에 싸아먹는 삼겹살이 좋다. 그냥 김치가 아닌 삼겹살 기름에 자글자글 튀겨낸 김치여야 한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불판을 5도 정도 기울인 다음에 삼겹살을 굽는다. 삼겹살이 익어가면서 기름이 자연스레 불판 아래쪽에 고이고, 여기에 숭덩숭덩 썰은 김치를 올려놓으면 끝. 삼겹살이 바짝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면, 김치도 알아서 자글자글 튀겨진다. 콩나물 무침과 파절임도 삼겹살 기름과 궁합이 맞다.


하지만 WHO에서는 붉은색 고기가 암에 좋지 않다고 했다. 삼겹살은 당연히 포함된다. 여기에 로스구이, 버섯 불고기 전골, 갈비, 족발, 부대찌개, 뼈해장국, 감자탕, 오삼불고기, 불낙전골... 이런 대단한 음식들도 더해진다. 심각하게 야박하다. 그러니 조금은 먹을 수 있도록, 아니 먹을 수 있는 핑계를 찾아보기로 했다.


https://www.who.int/news-room/q-a-detail/cancer-carcinogenicity-of-the-consumption-of-red-meat-and-processed-meat


가공육은 WHO의 암 유발 그룹 1군에 속하고, 적색육(돼지고기, 소고기 등)은 그룹 2A에 속한다. 그룹 1군으로 유명한 것은 담배, 그룹 2A에서 유명한 것은 DDT이다. WHO에 따르면 둘 다 대장암을 유발할 수 있는 식품이며, 가공육은 위암, 적색육은 췌장암과도 관련이 있다. 한숨이 나온다. 작년 9월 췌장에 물혹이 난 일로 바짝 쫄은 게 떠올랐다. 작년 11월 위내시경 검사 결과 위 상태가 안좋으니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경고를 먹었다. 둘 다 나한테는 멀어져야 하는 식품군이다.


암을 유발한다고 해도, 담배나 술보다 더 심하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WHO의 자료를 찾아 보았다.  WHO에 따르면 담배가 1년에 100만 명을 암으로 죽이고, 술은 60만 명, 대기오염은 20만 명을 암으로 사망하게 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가공육은 3.5만 명, 적색육은 5만 명이니 숫자로만 보면 담배에 비해 3.5%, 5% 수준이다. 이 정도면 아주 가끔은 맛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WHO의 자료에는 이런 희망을 내리 누르는 내용도 있었다.  


가공육을 매일 50g 먹을 경우 대장암 확률이 18% 증가하고, 적색육은 매일 100g 먹을 경우 대장암 확률이 17% 정도 증가한다는 추정이다. ,바로 얼마전에 병원에서 경고를 받은 상태인바,  맘 편하게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라는 심정으로 WHO를 벗어나 WCRF(World Cancer Research Fund)을 뒤졌다.


WCRF는 WHO보다 기분 좋게 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적색육의 경우 일주일에 350-500g(날고기 700-750g을 조리할 경우 500g이 됨) 정도를 3 등분하여 소비하고, 가공육(소시지나 햄)은 가능한 적게 섭취하라고. 그러니까, 일주에 한 근 정도는 먹어도 괜찮다는 의미다. 그럼 삼겹살도 되는 거네. 입에 침이 고였다. 벌써부터 지글거리는 삼겹살이 바로 앞에 놓인듯.



그러나 프라이팬이나 바비큐 형태로 고기를 구워 먹으면 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s 이나 heterocyclic aromatic amines 같은 암 유발물질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니 고기를 먹더라도 수육 같은 걸로 조리해 먹어야 된다는 의미다. 불판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는 삼겹살은 퇴출해야 될 모양이다. 암이란 병은 참으로 집요하고 치사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건 모두 못 먹게 만드는. 항암이 끝나고도 끝나지 않는 이 고통은..


독감 예방 주사를 맞은 것처럼 항암이 끝나면 암에 내성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품는 환자를 보았다. 하지만 암에 걸렸던 사람이 다시 암에 걸릴 확률은 일반인의 2배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암에 걸렸던 사람 또는 암 환자가 적색 고기(소고기, 돼지고기 등)를 먹을 때는 일반인보다 훨씬 적은 양을 먹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일주일에 한근이 아니라 한 달에 한근이라든지. WHO나 WCRF에 관련 자료가 없는 관계로. 이건 알아서 판단해야 될 문제가 돼버렸다.


암 치료 중에 있는 환자에겐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소고기, 닭고기, 전복 같은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라는 권고도 있다. 그것도 암에 상당히 권위 있는 병원에서. 혼란스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미국 암 학회(American Cancer Society)의 의견은 WHO와 WCRF와 같다. ‘적색육은 피하거나 줄여라.’


https://www.cancer.org/treatment/survivorship-during-and-after-treatment/staying-active/nutrition-and-physical-activity-during-and-after-cancer-treatment.html


가끔은 족발을 먹어 볼 생각이다. 집에서 적색육을 먹을 때에는 피를 완전히 뽑아서 먹기로 했다. 적색육에 들어 있는 피에는 철분이 함유된 햄(Haem) 성분이 있고, 이것이 장에서 분해될 때 N-nitro 화합물을 만들어 내어 장세포를 손상시켜,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소시지는 어쩌다 한 개를 먹거나 말거나, 가능한 눈에서 멀리 떨어트릴 작정이다. 종합해 본다면 내가 맘 편히 먹을 수 있는 단백질 식품은 닭고기, 물고기, 해산물, 두부요리.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악몽 같은 항암치료를 다시 경험할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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