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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Dec 16. 2020

첫인상


첫 번째 장은 ‘날 냄새’이다. 아프리카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과 알아두면 아프리카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채워보았다.


첫 번째 장


1. 첫인상


1- 1 : 동물의 왕국은 거짓말


17년 전쯤이던가,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말에 혹해 철원군에 있다는 '직탕폭포'에 간 적이 있었다. 사진 상에 펼쳐진 직탕폭포의 위용은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에 뒤처질 것 같지 않았다. 기대가 커, 아이들의 가슴도 잔뜩 부풀려 놨다. '우리나라에도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만큼 대단한 폭포가 있단다.' 한탄강 줄기에 있는 직탕폭포를 대하는 순간, 실망이 지나치면 화조차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래서 개구리가 폴짝 뛰면 폭포 위에 사뿐히 안착할 수 있는 높이, 그러니까 개미 정도 돼야 그 위용에 짓눌릴만한 폭포가 직탕폭포의 본질이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는 티브이를 통해 만들어졌다. 드넓은 초원과 밀림에서 약육강식의 법칙 하에 살아가는 야생동물. 기린, 사자, 영양, 코끼리. 우거진 밀림에는 타잔이 '아아아~'하는 괴성을 지르며 이 나무, 저 나무로 건너는 넝쿨이 드리워져 있고. 습지대나 강은 물고기 보다 더 흔하게 악어와 하마가 있어야 했다. 아프리카는 동물의 왕국, 밀림의 대륙인 것이다.


그런 아프리카로 가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닥친 식량위기를 도우는 일을 해야 했다. 도시를 벗어나 부족들이 사는 밀림으로 들어갈 것은 자명했다. 동물의 왕국에서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소한 생존을 위한 도구는 스스로 마련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았다. 부랴부랴 오지에서 조난당할 것을 대비하여 서바이벌 키트를 구했다. 그렇게 해서 오른 첫 출장길, 등에 진 배낭 내용물 절반은 서바이벌 물품이었다.


아프리카 '가나'에 도착해, 현지 사무실에 방문했다. 거기엔 프로젝트 동료인 '피터'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 첫 출장에 대한 두려움, 궁금함이 동시에 일었다. 업무 이야기로 말문을 열고 끄트머리쯤에 궁금한 내용을 물었다.


"피터, 도시를 떠나면 바로 사자와 영양 같은 야생동물과 마주치게 되는 건가?"

"사자? 무슨 말이야. 우리 일하러 가는 거야.. 야생동물을 보려면 동물원이나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가야지!"


처음엔 피터의 말이 납득되지 않았다. 아프리카에 처음 온 풋내기 한국인을 놀려줄 심산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다. 하지만 첫 출장에서 아프리카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는 인간의 왕국, 인간의 대륙이지 결코 동물의 왕국은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아프리카를 심어준 '동물의 왕국'은 새빨간 거짓이었던 것이다.


충격이었다. 그 충격이 크기가 얼마만큼 컸냐면,  '직탕폭포'가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광고는  '동물의 왕국'에 대면, 방바닥에 배를 문대며 기어 다니는 갓난아이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 티브이 브라운관에 들러붙듯이 봤던 프로그램인데. 어릴 적 꿈과 환상을 심어준 프로그램이 구라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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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부패한 대륙 아프리카


서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는 내가 첫 발을 내딘 아프리카 땅이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면서 창밖 너머 펼쳐진 풍경은 자연스레 과거를 소환했다. 멋없이 좌우로 길게 펼쳐진 네모난 성냥갑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 그 구조물 층층이 각지게 늘어선 유리창. 관제탑 모양도 참 예스러웠다. '1970년대쯤 지어졌으려나.' 공항의 출생시기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은 '김포공항'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공항이지만 친밀했다. 처음 방문하는 아프리카에 대한 어색함, 두려움, 긴장감이 꽤 가셨다.




공항건물 내부도 20세기가 담겨 있었다. 단출한 페인트로 칠한 벽면, 빛바랜 회색 바닥, 벽에 붙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발발대는 선풍기. 과거로 발을 성큼 내디뎠다. 그런데 갑작스레 혼돈이 몰아쳤다. 차근차근하던 소음 데시벨이 한순간에 최대치로 치달았다. '이게 뭐지?' 사람들 입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소음. 귀를 기울이자 그 소음의 정체가 영어란 걸 깨달았다. 당황했다. 긴장이 귀를 팽팽하게 당겼다. 영어는 당연히 알아들어야 했어야 했다. 그래야 이 대륙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세워도 사람들의 말이 영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입국심사대 투명 아크릴판 너머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제복을 입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는 내 여권을 뒤적여 보다 나를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영국식 발음에 짙은 아프리카 악센트. 영어는 영어이되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 아프리카 악센트가 없는 미국식 발음에만 익숙한 내 귀는 그의 말을 해석할 수 없었다. 긴 문장의 대화는 불가능. 짧은 단어와 손짓 발짓. 입국심사대에서 이렇게 긴 시간을 허비한 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별별 대화가 오고 갔지만, 나도 그도 그 대부분의 뜻은 이해하지 못한 듯싶었다. 그 역시 한국악센트가 잔뜩 낀, 미국식 영어를 들어봤을 가능성은 제로였으니 말이다. 마지막 그는 "FAO(국제식량농업기구 : Food and Agricultural Organization of UN)에 아는 사람이 있어 봐준다."라며 입국을 허가했다.


당시엔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지라, 'Thank you very much'를 연발하면서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숙소에서 곰곰이 상황을 복기하다 보니 정상인 상황 같지는 않았다. 여권이 일반여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목적지도 UN 산하 기구인 FAO이고. 그 사람이 나를 그 긴 시간 동안 잡아둔 이유가 무엇일까. 동양인인지라 테러리스트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고. 과연 무엇일까? '혹시 돈을 바라고 한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별의별 망상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망상이 말이 되는 게 아프리카였다. 그날, 아프리카에 첫 발을 내딘 날. 내가 하도 말귀를 못 알아듣고, 알아듣기 거북한 한국식 미국 영어를 해대니 제풀에 지쳐서 보내준 것이 정답에 가깝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KOICA 일로 방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출국 시 소위 삥을 뜯기는 게 아프리카의 어두운 현실이었다. 모든 나라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일부 부패한 나라에서 부패한 관료를 만나면 당하게 된다는 건 아프리카에서 일 좀 해본 사람은 알게 된다.


아프리카의 첫인상은 우리나라의 잘못된 정보와 아프리카의 부패였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 선진국인지를 자랑할 게 아니라 잘못된 정보를 사실처럼 심어주는,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게 만드는 상황은 줄여야 할 것이다. 더하여 부패된 나라에 대한 교육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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