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타카 Dec 17. 2020

아프리칸 타임

아프리칸 타임 


‘아프리칸 타임'. 이를 설명하려면 '코리안 타임'부터 말문을 열어야 한다. 대략 1980년대 중반쯤이었다. 선생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약속 시간에 도착하면 기다리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들었던 '코리안 타임'.  얼추 약속시간 30분 언저리로 오면 용서되는 개념. 시간이 늦었다 뭐라 하면 '사람이 야박하다'라는 핀잔을 들었다. 그래서 코리안 타임은 여유를 가지자는 의미의 일종의 '미풍양속'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코리안 타임은 한국 전쟁 때 미군이 약속을 번번이 어기는 한국인을 좋지 않게 생각해서 만든 말이라 한다. 툭하면 약속을 어기는 한국인을 바라보며 체념하듯 'Damn, Korean Time!'이라 중얼거렸을 미군을 떠올릴 수 있겠다. '아프리칸 타임'은 한때 우리나라서 유행했던 '코리안 타임'과 닮은 구석이 적잖다.


하지만 코리안 타임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기도다. 아프리카 식 코리안 타임이랄까. 그래서 '아프리칸 타임'이라 했다. 아프리칸 타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프리카에 익숙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아프리카 일을 시작할 때, 아프리카 동료들에게 신뢰감을 느꼈었다. 어디 가나 듣는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하세요.'라는 호의에 감격했다. '아프리카 식량난 해결에 꼭 도움을 줄 것이다.'라는 의지가 샘솟았다.  하지만 이는 허망한 립서비스였다.  


프로젝트는 쓴 돈을 제대로 확인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나는 이 기본을 하려 아프리카 사무소에 전화했다.


"지금까지 쓴 예산 내역서와 남은 예산에 대한 자료 좀 보내주세요."


이 요구를 하고서, 얼마나 되지도 않는 핑계로 일이 미루어질 수 있는 지를 절절이 깨닫게 되었다. 그나마 보내온 자료는 초등학교 6학년도 혀를 끌끌 찰 수준이었다. 운도 없었다. 사실 시간 늦는 것은 다반사지만 이리 일을 엉망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서 주변 아시아 출신 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한 바, 그들은 한국보다 적어도 2,3배의 시간을 더 주고서 일을 시키라 조언해 줬다.   


그 이후 코트디부아르, 나이지리아를 경유하는 현장교육 프로그램 운영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들은 대로 2,3배 시간을 더 주었다. 이때  ‘내 성격이 한국에서도 급한 편.’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2,3배의 시간을 더 주고 짠 교육계획은 연기되었다.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지만, 눌러 참아야 했다. 내가 급한 거지, 그들이 늦은 건 아닌 게 아프리카의 룰 같았다.  그 이후 론 내 머릿속 시간셈 적어도 4배 이상을 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아프리카 타임'이 적용되지 않는, 시간이 칼처럼 지켜지는 경우도 있다. 현지에서 일정을 잡을 때다. 교통수단이 좋지 않고, 테러나 강력 범죄가 빈발하는 위험한 지역이 많기에 일정이 어긋나면 목적지로 가지를 못하거나 위험해진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이동할 때, 차량이 약속시간보다 꽤 늦는다면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우기에 길이 질퍽거려 차로 이동이 불가능한 경우 같은 것이다.   


또 한 가지의 경우는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지시다. 높은 분이 강력하게 지시하면 시간에 맞추어 움직여 준다. 한 번은 우리나라 경운기를 운반하는 수송선이 일정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코트디부아르 높은 분이 관심을 가진 ‘한국 경운기 교육’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원래 경운기 통관은 하루 이틀사이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통관과 수송이 동시에 이루어져, 제 시간이 경운기가 도착했다. 경운기가 교육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아프리카에도 이런 일이 있구나.' 


'아프리칸 타임'엔 파생상품이 있다. 무엇을 요구할 때 심하게 독촉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아프리카 사람에게 이런 독촉을 들으면 큰일이라도 난 줄 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저렇게 말할까. 나중에 알고 보면 별로 급하지 않은 일도 호들갑을 떤 것이었다. 일종의 관행처럼 그랬다. 그렇게라도 독촉해야지 안 그랬다간 일처리가 한없이 늘어지기 때문이다,라고 이해했다.  


모든 아프리카 사람이 아프리칸 타임을 삶의 지침으로 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프리칸 타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쳐보려 하다 보면, 속이 부글거려 위장병에 걸릴 위험만 높아진다. 






----------------------------------------------------------------------------------------------------------------------




작가의 이전글 첫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