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타카 Dec 23. 2020

남 탓과 핑계

남 탓과 핑계

삶을 되돌아보면, 별 같잖은 남 탓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남 탓이 꼬맹이도 속지 않을 내용인데도 종종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고 홀랑 넘어가기도 한다. 사방에서 진실인 양 떠들어 대면 최면술에 걸리듯 홀리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의 남 탓이 그랬다. '처음엔 무슨 말을 저리 하나.' '저 사람들 이상하네.'가 나중에는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로 바뀐 적도 있었다.          


A: "그러니까. 100만 달러가 넘는 설비가 방치되는 게 순전히 한국 탓이라고요?"     

B: "당연하죠. 생각해 보세요. 아프리카에 전기가 신통치 않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데.. 이런 곳에 전기로 가동되는 설비를 지원해 준거잖아요."     

A: "그 설비를 지원해 달라는 건 당신네 아닌가요?"     

B: "그러니까 말이죠. 그런데 그런 최신 설비가 어떻게 가동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전문가도 없는데. 남들이 좋다니까 달라고 한 거지. 발전된 한국이라면 그 정도는 딱딱 알아서 해줘야 하는 거 아녀요?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은 거죠. 당연히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발전기도 같이 지원해 줘야지. 이건 도와주겠자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3년간 아프리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간간이 고철로 나뒹구는 기계들을 목격했다. 방치된 건물도 있었다. '저건 뭐예요?' 하면 해외에서 원조받은 것들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왜 그리 된 거예요?' 그러면 원조받은 물건을 제대로 관리 못해서 그리 된 거라 했다. 언젠가 원조로 잔뼈가 굵은 영국인과 대화한 적이 있었다.          


"요즘에도 기계나 건물을 지어주나요?"     

"예전에나 그랬죠. 요즘도 하긴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아요."     

"원조를 줄였다는 말씀인가요?"     

"아니요, 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유럽국가들은 자국민이 주도하는 연구활동에 돈을 점점 더 많이 쏟아붓고 있는 형국이었다. 원조긴 원조였다. 자국민들을 위한 일자리를 위한 원조기도 하고. 스스로 할 생각 없이 남 탓에 골몰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21세기 들어 중국이 다양한 투자와 원조로 아프리카에 발을 넓히고 있다. 아프리카 경제학자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중국이 아프리카를 착취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자원을 빨아먹으면서 아프리카를 너덜너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중국의 경제 식민지가 되고 있다면서 중국 탓을 했다.          


그리고는 아프리카가 왜 이리 가난하게 되었는지. 발전을 못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이유가 줄줄이 이어졌다. 그런데 아프리카 서민들은 중국을 그리 나쁘게 보지 않고 있었다. '중국요. 덕분에 일자리가 생겼어요. 정부는 백날 가도 못해주는 그 일자리요.' 아프리카의 남 탓은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성차별도 없이 평등하게 만연해 있었다.   

      

1960년 이후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한 아프리카. 독립 후 반백년은 훨씬 넘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전히 유럽 탓에 아프리카가 못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유럽은 그 책임을 다해야 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을 아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프리카의 가난과 문제는 유럽사람들로 인해 기인한 것일까? 궁금하면 못 참는지라 아프리카의 역사를 뒤적여 보았다. 중세시기엔 이슬람 학자들이 적은 기록이, 근대에는 유럽사람들이 적은 기록이, 21세기 이후엔 아프리카 출신 학자가 적은 기록이 있었다.        

  

역사를 기록한 사람에 따라 국적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프리카의 가난과 문제는 유럽사람에게서만 기인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탓을 하면서 자신들이 피해자라 주장하는 부분이 노예에 관련된 부분이 크다. 그래서 관련된 알아본 내용은 이랬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출한 것은 10세기 전부터 있었다고 하며, 당시 아프리카 기득권의 이익에 컸기 때문에 그랬다고도 한다. 팔려 간 흑인들은 병사로 키워진 경우도 있었다. 역사에도 남은 거세한 흑인 병사. 끔찍한 일이었다. 그 이후 유럽과 교역이 터지면서 힘이 막강한 국가의 왕들 또는 지역의 부족장들도 전쟁포로나 범죄인들을 노예로 팔아넘겼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노예수요가 충족되지 않자, 힘없는 작은 국가나 부족을 습격해서 이들을 잡아다 노예로 팔았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죄 없는 아프리카인들을 잡아다 판 것이었다.  

        

티브이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뿌리'라는 미국 흑인 노예사를 다룬 드라마에서, 주인공 쿤타킨테는 아프리카 토호 세력에 의해 잡혀, 미국에 팔려나간 것일 수도 있다. 저의 주장에 불만이 계실 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무슨 헛소리를 그리 그럴듯하게 하시나? 어디를 봐도 아프리카는 유럽 열강의 수탈에 의해서 사람과 자원을 쪽쪽 빨린 비운의 대륙인데 말이야!"       

   

이런 반발에 할 말이 뭐가 있겠나. 우리나라는 왜 세계사 공부를 이따위로 시키는 거지? 하면서 저 역시 국가 탓을 할 수 밖엔.          


"아프리카 역사책을 읽어보세요. 요즘은 인공지능 덕에 자동번역이 잘되니, 저처럼 사전 찾아가면서 눈이 빨개지게 읽지 않아도 될 겁니다." 정도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흑인 노예가 가장 오랫동안 남은 대륙은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 기득권층이 흑인 노예를 재산으로 취급했기에, 미국과 유럽에서 노예를 해방시킨 이후에도 저항을 했기 때문이다.. "내 재산을 네가 뭔데 맘대로 해!" 그래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해방은 20세기에 이르러 가능했다.  

             

19세기, 유럽의 공세로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는 식민지가 된다.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는 식민지를 면하고 독립된 나라로 명맥을 이어갔기도 했지만. 유럽의 공세에 맞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저항을 하게 되는데 그중 서아프리카의 저항은 유명하다. 아프리카의 아마조네는 전설처럼 전해는 여전사 집단도 있었다. 프랑스군대에 패해 지리멸렬한 다호메이국(Kingdom of Dahomey)의 남성 군대를 대신해 투입한 여전사들이 프랑스군을 단박에 물리쳤다고 한다. 아산티제국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서 아산티제국의 땅인 가나가 서아프리카에선 가장 먼저 독립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 서아프리카 제국들은 지리적으로 노예무역에 유리한지라,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잡아다 팔아버린 주역이다. 그렇기에, 그 돈으로 군대를 무장시키고 유럽 열강에 맞서 싸울 수 있지 않았을까.  

        

19세기 아프리카 역사를 들춘 것은 19세기 이전까지 흑인 노예의 수요처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었지만, 아프리카인을 잡아다 팔아먹은 것은 아프리카의 기득권층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다. 


이런 역사를 알게 되니, 더 아리송해졌다.          


"왜. 아프리카 사람들은 유독 남 탓을 하는 이유가 뭘까. 스스로를 망친 아니 수백 년 동안 자국민을 잡아다 자기 배만 불렸던 기득권층에 대한 원망은 없나?"     

.










작가의 이전글 아프리칸 타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