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타카 May 13. 2021

유럽은 유기농산물에 농약을 친다.

유기농산물. 한 때 과학자를 꿈꾸었던 나는 유기 농산물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일반 농산물과 비교해 안전해 보이지 않은 탓이다. 농약은 덜할지 모르지만 기생충이나 유해 미생물은 오히려 더 많이 붙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자연계에서 나오는 독이 화학적으로 합성한 독보다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간암에 치명적이라는 아플라톡신 같은 물질이나 비소는 자연에서 나오는 독소다. 이런 자연독이 일반 농산물 보단 유기 농산물에 더 많이 함유돼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안전생산기준에 따라 농사를 지은 GAP 농산물이 가장 안전하겠지, 싶었다.


더하여 유기 농산물과 관련한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도 있다. 2002년 독일에서 유기 농산물 비료를 똥으로 만든다는 설명을 들었다. 단박에 어릴 적 푸세식 화장실이 떠올랐다. 여름이면 벽을 기어오르는 하얀 구더기들. 그런 게 얼마나 비위생인지를 알기에 절로 눈살이 지푸러졌다. 우리나라의 유기농법에 대한 비판적인 말도 있었다. 독일 유기농 전문가(우리나라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는 한국은 산지가 많아 평야지가 좁고, 장마철에 폭우가 내리는 기상여건이라 유럽에서 하는 유기 농법을 따라 하는 건 어렵다, 고 했다. 원래부터 유기 농산물에 부정적이던 나는 독일 출장 후, 확실하게 관심을 끊었다.


암에 걸린 후, 유기 농산물이 좋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떠밀려 유기 농산물을 먹기 시작했다. 뭐라도 좋다면 먹어 보는 게 암환자의 자세니. 이후에는 암을 유발하는 농약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농약이 두려워 유기 농산물을 더 찾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어제 아침 찾아본 자료는 충격이었다.


EU 식품 안전청에 따르면 유기 농산물에 농약성분이 나왔다고 한다. 2018년 자료인데, EU에서 정한 농약잔류 허용치를 넘은 유기 농산물이 전체의 1.4%라고 했다. 아연실색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농약잔류 허용치를 넘지는 않았지만 농약이 나온 건 13.8% 남짓. 그나마 우리나라 자료가 아니라 EU 자료였기에 망정이지,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20년 전 내가 관련 업무를 할 당시 유럽의 식품 안전성 관리 기준은 깐깐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일반 농산물 자료도 훑어보았다. EU에서 정한 농약잔류 허용치를 넘은 게 전체의 4.8%. 농약잔류 허용치 이하로 검출된 게 전체의 46.0%. 그러니까 대략 50%의 농산물에서 농약이 나왔다는 말이다. 조사 결과를 볼 때, 일반 농산물이 유기 농산물보다 농약 검출이 3배 이상 많았다.


The 2018 European Union report on pesticide residues in food


이쯤 되자, 우리나라는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식품안전 주무부처인 식품의약안전처 홈페이지를 찾았다. 식품안전 관련 법과 예산을 총괄하는 부처다. 미국은 농무성과 FDA가 식품안전업무를 이원화하고 있으며, 유럽의 여러 나라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업무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는 한 개의 기관으로 식품안전관리를 통일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 EU 식품 안전청에 필적한 자료를 기대했다.  


찾을 수 없었다. 별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 없어 미국 정부기관의 관련 자료를 살펴보았다. 미국 NCBI(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에 흥미로운 자료가 있었다. 2017년 발표자료인 ‘Human health implications of organic food and organic agriculture : a comprehensive review’다. 여기에는 EU에서 허가한 농약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었다.


EU는 2017년 기준, 385가지의 농약을 일반 농산물용으로, 26가지의 농약을 유기 농산물용으로 허가했다. 유기 농산물용으로 승인된 대부분 농약은 인체에 해가 없는 천연성분이고 일부는 해충을 유인하여 죽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에 식품안전에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적다. 그렇지만 구리 성분의 농약의 경우 다량 섭취 시 독성 우려가 있다. 그리고 제충국(Chrysanthemum cinerariaefolium)에서 추출한 농약성분인 Pyrethrins는 합성 피레스로이드 살충제와 동일한 작동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으면서 안전성을 떨어진다. 쉽게 풀어쓴다면, 유기 농산물용 농약도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어떤 대목이 눈길을 확 잡아당겼다. 농약의 안전성 평가에 대한 부분이다. 농약 안전성 평가 항목에 암과 관련된 항목이 있기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두 가지 이상의 농약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발암성, 내분비 교란, 신경독성에 대해 농약 안전성 관련 위험분석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우려다.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농약을 동시에 섭취했을 때의 위험분석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농약 이외에 유기 농산물의 특별할 점이 있을까도 살펴보았다.  애매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애매하면 영어 해석이 복잡해져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중요할 것 같아 세밀히 해석했다. 다 해석한 후 머리가 지끈거렸다. 유기 농산물이 알러지성 병을 줄이고 비만을 방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 하면서 바로 이에 초를 치는 내용을 붙여놨다. 유기 농산물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생활방식이 건강하니, 알러지성 병이나 비만이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기 농산물 때문인지, 건강한 생활방식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는 내용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보고서에는 전반적으로 애매한 내용이 많았다. 개중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소개하자면.


‘실험관 및 동물 연구에서 유기 농산물이 세포의 수명, 면역 체계, 전반적인 성장 및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 역시 사람의 건강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처음엔 기대를 부풀게 하고 모호한 결론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그리고 유해미생물에 있어서도 유기농산물이 일반농산물보다 더 적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화학살균제를  살포하는 일반농산물이 유해미생물이 더 적을것 같은데, 무슨말인가 싶어 내용을 파보았다. 화학살균제를 뿌리면 유해한 미생물뿐아니라 도움이 되는, 그러니까 유해미생물을 잡아먹는 미생물도 죽인다는 것이다. 반면에 유기농산물은 유익한 미생물이 많이 살아 있어, 시간이 지나면 결국 유기 농산물에 붙어 있는 유해미생물의 수가 일반 농산물보다 적을 수 있다고 한다. 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 유기농산물은 유해한 미생물이 많을거라는 생각에 금이 갔다.


종합하여 볼 때, 유기농 농산물을 구입하는 게 현재의 나로서는 정답에 가깝다. 양한 EU국가들의 평균치로 작성한 자료이니, 국가를 봐가며 수입 유기농산물을 선택하면 농약 걱정은 심각하게 할 필요가 없을듯 싶다. 더하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유기농산물의 경우 농약검출 거의 없다. 혹시나 세포의 수명, 면역 체계 등에 관련된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 있으  더 적극적으로 유기농산물을 선택해야 할 모양이다.




우리나라와 다소 상이한 유기 농산물 기준을 가진 EU 자료로 내용을 서술였음.



참고 : Environ Health, 2017;16:111. Axel Mie, Helle Raun Andersen, Stefan Gunnarsson, Johannes Kahl, Emmanuelle Kesse-Guyot, Ewa Rembialkowska, Gianluca Quaglio, and Philippe Grandjean. Human health implication of organic food and organic agriculture: comprehensive review. (ncbi.nlm.nih.gov/pmc/articles/PMC5658984)


EFSA Journal, 24 February 2020.  The 2018 European Union report on pesticide residues in food. (식품의약안전처, R&D 동향 및 정보 2020-04-13 자료)

매거진의 이전글 농약의 위험성/암, 치매, 우울증, 사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