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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un 06. 2021

농산물 원산지 표시? 정말 필요한가?

아는 게 힘이란 말을 맹신에 가깝게 따랐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세상은 몰라도 되는 일, 아니 몰라야 편하게 살 수 있는 일이 도처에 있었다.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 그런 일이 없어야 될 것 같았지만, 유감스럽게 인간은 DNA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본능과 감성을 온전히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아는 게 꼭 좋은 일이 아닌 경우가 있다.


많은 부분을 모른 체, 알고 싶지 않은 체 살고 있어도 지금까지 손을 놓지 않은 부분은 과학이다. 과학도 불완전한 인간의 지식으로 발전해는 것이라, 10년 전에 참이 지금은 거짓으로 밝혀지는 일도 있지만 그래도 인간이 관념으로 정한 이상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보단 신뢰가 부여된다. 그래서 과학은 계속 눈여겨본다.


암에 걸린 이후 건강에 대한 과학지식을 주워 담고 있다. 그러던 중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농산물 원산지 표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한 감자나, 유럽에서 생산한 감자나,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감자나, 감자이기는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굳이 농산물에 원산지를 표시하여 그 출신성분을 밝혀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식량자급률이 45%인 우리나라에서 농산물 수입은 필수다. 어차피 외국산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고살아야 한다면, 마음 편히 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원산지를 표시하고 관리한다고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게 합리적인 일일까? 이런 의문에 농산물 원산지 표시를 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킬, 과학적 데이터를 찾아보았다. 과학적으로 농산물 원산지 표시가 주는 이득이 적다면, 농산물 원산지 표시에 신경을 덜 쓸 작정이었다. EU 식품안전청 자료는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었다. 농산물 원산지 표시는 꼭 알아야 되는 것이다. 건강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출처 : EFSA Journal 2021;19(4):6491 / The 2019 European Union report on pesticides residues on food

위의 표는 EU 내로 수입되는 외국산 농산물에 농약이 얼마만큼 잔류되었는가, 즉 농약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조사한 결과다. EU를 상대로 농산물을 수출하는 나라들이 얼마만큼 농산물 안전성 관리에 신경을 쓰는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우측의 오렌지색 막대그래프는 농약잔류허용기준(식품안전 등의 이유로 식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농약의 잔류량을 정한 기준)을 넘어선 농약성분이 나온 농산물 비율을 의미한다. 좌측의 파란색 막대그래프는 농약잔류허용기준 이내로 농약성분이 검출된 농산물 비율을 나타낸다.   


예를 들자면 태국(Thailand)의 경우, 조사 대상 농산물의 17.5%(오렌지색 막대그래프)가 농약잔류 허용기준을 넘어섰다. 18.3%(파란색 막대그래프)의 농산물에서는 농약이 나오기는 했지만, 농약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하지는 않았다. 이 표에 의하면 중국보다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의 농산물에서 농약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한 농산물이 더 많았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조사 농산물의 4.5%에서 농약잔류 허용기준치가 넘는 농약성분이 검출되었다. 25%의 농산물에서는 농약잔류허용기준 이내로 농약성분이 나왔다. 러시아, 캐나다, 카자흐스탄, 호주, 뉴질랜드의 농산물에서는 농약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한 농산물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 표의 결과는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수입농산물의 상황과 다다. 우리와 EU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EU는 하나의 나라가 아닌, 선진국으로 알려진 독일, 프랑스, 스웨덴을 위시하여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루마니아 등이 포함되어 있는 연합체이다. 식문화에 차이도 있어, 조사대상 농산물이 다를 수 있다. 더하여 나라마다 검사한 농산물 수도 다르다. 2만 여점을 조사한 독일부터, 1천 개도 조사하지 않은 포르투갈, 어떤 나라는 200-300개 수준의 농산물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농산물에 잔류된 농약 성분이 있는지 여부를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EU 식품안전청 자료만큼, 누구든지 쉽게 알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물론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나 EU 식품안전청 자료에 뒤처지는 식품안전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날이 올 때까지는 EU 식품안전청 자료를 참고해 보는 것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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