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정책 I : 일본–평생직장

by 이타카


일본 정책을 맨 처음 꺼낸 것은 일본 정책이 다른 나라에 비해 대단해서가 아니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 정책이 일본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 영향은 21세기인 요즘에도 계속 되고 있는데, 지난 정부의 정책 중 하나인 '6차 산업' 같은 정책이 일본 태생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지리적으로 이웃나라다 보니, 우리나라와 일본이 서로간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 정책을 벤치마킹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고찰하고 타산지석의 배움을 얻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안정적인 직장, 높은 보수, 좋은 노동조건. 이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대단한 제도가 일본에 있다. 평생고용제도다. 노동자의 삶의 질을 부쩍 높이고, 일본 고도 경제성장을 견인했으며,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오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 살던 일본인이라면 ‘평생고용제도’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이런 거야 말로, 일본 정부가 제대로 한 정책이야. 하면서 말이다. 서양세계에서 기적이라고 불렸던 고도 경제성장을 지탱한 기둥 중 하나인 평생고용제도. 그러기에 세계 석학들이 관심을 보였고, 여러 나라에서 배우고자 달려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평생고용제도란 정책의 시작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일본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했던 의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때는 1945년, 패전국 일본에 상륙한 연합군이, 군정을 펼칠 무렵이다. 항복한 적에게 관대할 점령군이 얼마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연합군 군정은 일본에게 그리 도움되지 않는 정책을 실시했을 거라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그중 하나가 재벌회사 쪼개기, 힘 빼기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품을 찍어내고, 일본이 군사력을 키울 수 있도록 경제적 뒷받침을 한 주역이 일본의 재벌이었다. 점령군들은 '저 놈들이 만든 총과 대포로 내 동료가 죽었지'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구체적으로 연합군 군정이 내민 카드는 독과점 금지였다.


그리고, 선한 얼굴을 하고선 노동자 권익 보호를 내세웠다. 노동법 개혁이다. 언듯 보기엔 노동자를 위한 정책 같으나, 속내는 달라 보인다. 서구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강력하게 추진되어, 재벌의 힘을 빼버리고 일본 시장을 교란하는 정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정책이었다. 이런 추정이 가능한 것은 그럴만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1945년 일본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0%였는데, 1949년에는 60%로 급격히 증가했다. 당시 국제 평균은 약 30%이다.

1945년 노동조합법은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파업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은 연합군의 공격으로 기간 시설 상당수가 파괴된 상황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말미암아, 총칼을 들이밀며 수탈을 했던 식민지도 상실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1,310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설상가상, 식민지에서 들어오던 쌀과 같은 농산물, 석탄이 차단되었다. 식량난, 연료난이 섬나라를 덮쳤다. 이런 시점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된 것이다.


결성된 노조는 적정임금을 외치면서, 직원 해고를 제한하는 평생 고용 시스템을 경영진이 받아들이도록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배고픔과 추위를 벗어나고 싶었을 테고, 끝 모를 불황과 경제 침체 상황에서 회사는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전국적으로 파업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연합군 군정은 이 광경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입장을 바꿔서 당시 일본인은 연합국 군정이 펼치는 정책에 얼마나 공감했을까. 강제로 시행되는 정책이 가뜩이나 못마땅했을 터에, 피폐된 삶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더 악화되는 모양새였으니. 만약 당시에 연합국 군정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했다면. 그 결과는 굳이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책 기사에 대한 리플을 달 수 있었더라면, 끝없는 악플이 줄을 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발 소식이 들려온다. 중국 공산당이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합국, 특히 미국은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공산당의 확산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 돼버린 것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일본을 방어선으로 하면 될 것 같았지만, 일본은 엊그제까지 미군에게 총을 겨눴던 적군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을 공산당 확산 저지를 위한 방어선으로 삼기로 하고, 패전국에 가하는 징벌적 정책에서 힘을 빼게 된다. 그 결과로 1945년 시행했던 개혁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1948년도엔 닷지 플랜(Dodge Plan)이라는 이름의 3대 과제가 도입되었다.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지 않고 경제적인 자립을 시키기 위한 계획이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이 경제적 자립을 해야, 공산당을 막는 데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다. 닷지 플랜의 첫 번째는 균형 예산, 두 번째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생각되었던 신규 대출 중단, 세 번째는 보조금 축소와 폐지였다.

하지만 닷지 플랜은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불황과 경기 침체를 헤어나기에는 난관이 너무 많았고, 정책은 이를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당시 일본은 어떤 방법을 쓰건 침몰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범선과 닮아 있었다. 와중에 파업으로 망하게 생긴 업체들은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평생고용제도가 태동하였다. 이런 분위기로 쭈욱 갔다면...

이런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터진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일본은 분단되지 않고 원래 형상을 유지했는데, 애먼 우리나라가 분단되어 겪게 된 민족의 비극이었다.

우리에게 밀어닥친 불행은 일본에겐 새로운 희망의 출발선이 되었다. 일본은 연합군의 병참기지가 되면서 빠른 속도로 경제가 회복되었다. 군수물자를 미국 본토에서 수송하는 것보다, 일본 내에서 생산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판단한 미국은 일본의 기간시설을 키우게 된다. 군복·모포 제조 등 섬유산업은 물론 시멘트·강관·식품·차량·중장비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군의 발주가 일본 기업으로 몰려들었다.


일본은 한국 전쟁 덕에 1951년에 5억 9000만 달러, 1952년과 1953년에는 8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다. 이는 경제 회생의 마중물이 되었다. 서구 국가의 발전된 기술이 유입되고, 설비투자와 기술혁신을 이루어졌다. 일본이 얼마만큼이나 경제적인 혜택을 보았는가에 대한 단적인 통계를 소개하자면, 1950년부터 1951년까지 세계 교역량이 34% 증가할 때, 일본은 70%까지 증가했다.


한번 터진 운은 계속 이어졌다. 1952년 미일 안보 조약이 서명되고 일본은 독립국의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 더하여 일본에겐 큰 짐이었던, 전쟁배상금도 면제받았다. 이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로, 결과적으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적에서 미국의 동맹국으로 변모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엔 독과점 금지를 약화시켜 소니, 도요타, 파나소닉 같은 일본 대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일본의 고도성장기에는 평생고용제도가 일본인을 부유하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긍정의 역할을 하게 된다.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소득은 내수를 진작시켜,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데 힘을 보탰다. 그러기에 전 세계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으며, 많은 나라에서 이를 벤치마킹하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행운은 계속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이 침체가 30년을 이어오면서, 평생고용이라는 경직된 노사관계는 회사가 살아남는데 걸림돌이 된 모양이다. 지금은 전체의 9%도 안 되는 회사에서 평생고용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니 말이다. 임시직, 파트타임직이 확산되어 고용과 소득, 모두 예전과는 다르게 바뀌었다.



역사는 이쯤에서 정리하고,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평생고용제도를 바라보겠다. 평생고용제도에 대한 공감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변화하는 모양새다.


연합군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노동정책,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평생고용제도를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공감했을까. 나라를 망치는 연합군 군정의 수작이라며 성토했을 일본인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평생고용제도는 일본 국민을 부유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된다. 사람들은 평생고용제도에 만족해하며, 이를 좋은 제도라고 공감했을뿐더러 이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잠깐 휘청이다 말겠지 한 경제 침체가 30년간 계속되면서, 평생고용제도는 인기를 잃어버린다. 저물어 가는 태양과도 같이.


우리 정책도 변화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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