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정책 1. 일본의 몰락-미도리시

by 이타카

1990년 일본 미도리시 시청 회의실. 커다란 원탁을 중심으로 시장을 비롯한 간부급 공무원들이 빙 둘러앉았다. 미도리시 경기 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관광단지를 검토하는 회의다. 시장이 입을 열었다.

‘자자 허심탄회하게 이 관광단지 조성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말해보세요. 아무래도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한 간부님들이 나 보다는 전문가님들 이실테니.’


총무과장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시장님, 프로젝트는 좋은데, 우리 시 예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듯 보입니다. 들어가는 돈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장은 잠시 총무과장을 쬐려 보더니 벌컥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아니 총무과장님, 장사 한두 번 하시나? 어차피 돈이 부족하면 정부에서 가져오면 되잖아요. 그렇게 소심하게 일해서 어떻게 미도리시를 발전시켜요!’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지자체가 돈이 부족해지면 중앙정부가 채워주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일본 지자체는 일을 벌일 때 굳이 손익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 시장 입장에서는 ‘표심만 잡을 수 있다면.’이란 유혹에 빠지기 쉽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시장에게 잘보이고 감사에만 안걸리게 하면 될터이다. 1980년부터 1996년 사이 지자체의 지출은 4배로 증가했다. 반면에 중앙정부의 지출 증가는 소폭이었다. 이 시기는 본격적으로 일본 경제가 침체기로 빠져든 시기였다.

미도리 시장은 뚝심으로 밀어붙인 끝에 ‘친환경 경관 테마파크’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관광객들이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기념품(1천엔 전후의 소액선물)을 개발하고, 지역 향토식품을 가공하는 공장도 세웠다. 테마파크가 완공하는 날, 시민들은 환호했다.

‘우리 시에 저렇게 멋들어진 테마파크가 생기다니. 이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우리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줄 거야.’


그러나 이는 미도리시에서만 벌어진 현상이 아니었다. 일본 전역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문제는 대부분 지자체 생각이 비슷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생각이 비슷비슷하니 사업도 비슷비슷해지고. 그러다 보니 찬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거나 세간의 관심을 모을 볼거리가 없는 지자체에는 관광객이 몰리기 어려웠다. 평범한 도시에 불과한 미도리시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기대에 한참이나 못 미쳤다. 기대한 만큼의 일자리 창출도 없었고 돈을 벌여들이지도 못했다.

1990년대 일본은 공공사업(세금 지출)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적신호가 들어왔다. 1992년과 1993년 1년 사이에 공공지출이 15% 늘어난 반면, 경제성장은 1% 에 불과하다는 자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자료를 일본 정부는 무시한 듯 보인다. 아마도 ‘경기가 나빠져 민간투자가 줄었으니, 경제성장이 1% 인 것이다. 공공부문의 투자가 비효율적인 건 아니다.’라고 변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친환경 경관 테마파크에서 쓴맛을 본 미도리시 시장은 다른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폼나고. 무너진 체면을 세울 수도 있고. 그런 계획이어야 했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주민들의 표심을 끌어당길 수 있으니.

1996년 기준, 3,000개가 넘는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중 143개 지방자치단체(4.3%)만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예산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나머지 약 2,860여 개의 지방자치단체는 돈이 부족해 중앙정부에 손을 벌렸다.

이런식으로 지자체가 돌아가다 보니, 1996년 말 지자체의 부채는 103조 엔에 달했다. 지자체가 벌어들이는 돈의 거의 2배에 버금가는 빚이었다. 빚이 늘어나니 이자가 늘어나고, 이자가 늘어나니 이자로 지출되는 세금액수가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지자체의 돈 창고는 빠르게 고갈되었다. 일본의 높은 부채는, 지방자치단체의 비효율적인 운영과 더불어 일본을 장기 침체의 늪에 빠트린 원인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대략 20년 후인 2015년. 아시아 개발은행에서 눈여겨 볼만한 보고서(Causes and Remedies for Japan’s Long-Lasting Recession: Lessons for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를 발간한다. 일본의 장기불황 원인을 분석한 내용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교육이나 과학 같은 중요한 부분에 지출(2015년 기준 5.6%) 하기보단, 표심을 끌어당길 수 있는 비효율적인 곳에 지출을 더 많이 했다고 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이런 비효율성을 일본의 장기불황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필자가 2009년 미국 뉴욕주에 있는 C대학에서 농촌 개발학을 공부할 때의 일이다. 같은 과에는 이타카 시청 직원인 벤씨가 석사학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시청 일과 공부를 같이 하느라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듯했다. 몇 날을 지켜보던 중 궁금증이 일었다. 시청 공무원이 저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석사학위를 취득한다고 해서 도움 될 일이 없는데, 미국은 다른가? 궁금하면 물어보는 게 답을 알 수 있는 방편이다.


“일하시면서 공부하느라 힘들겠어요. 그런데 석사학위를 따면 유리한 게 있나요?”


“저는 뉴욕 주정부에서 일하고 싶어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C 대학교 학위면 뉴욕 주정부 공무원이 되는 데 유리하거든요.”


“이타카 시는 범죄도 없고, 자연환경도 아름다운 도시인데 여기보다 날씨가 좋지 않고 범죄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도시에 자리 잡은 뉴욕 주정부에서 일하면 무슨 장점이 있나요?”


“이타카 시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월급이 적어요. 특별히 정책이란 것도 없어서 반복되는 행정 일만 하니 별재미도 없고요. 아무래도 돈도 많이 주고 비전도 있는 주정부가 낳지요.”


당시 필자는 미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앙부처 공무원이나 지자체 공무원의 월급이 같은 줄 알고 있었다.


“월급이 주정부 공무원보다 적다고요?”


“예, 이런 조그만 시는 재정형편 상 시청 직원의 월급을 넉넉하게 주기 어려워요. 저만 해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지경이라니까요. 좀 더 설명하자면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의 월급이 가장 많고. 주정부가 다음이고, 카운티나 시 공무원이 가장 월급이 적다고 보시면 돼요.”


깜짝 놀랐다. 중앙정부 공무원과 지자체 공무원의 월급이 다르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타카 시는 풍족한 도시처럼 보였다. 슬럼가도 없고 깔끔하고.


“이타카 시가 그렇게 가난한 것 같지 않던데요? 가을에 열리는 사과 축제만 해도 꽤나 거창하게 하잖아요.”

“사과 축제야 워낙 오래전부터 해 온 거라 주민이 스스로 참여해요. 게다가 C 대학교 학생, I 대학교 학생들의 자원봉사도 있고 해서 시가 그리 돈이 들이지 않아도 돼요. 시는 교통정리니, 쓰레기 청소니 이런 것에 주로 신경을 쓰지요. 괜하게 시 돈을 펑펑 쓰다간 시가 망해나갈 수도 있어요.”


그를 통해 알게 된 건, 이타카 시는 주민의 복지와 시의 유지관리에 총력을 기울인 다는 것이었다. 더하여 농촌 개발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바, 미국은 지자체에서 대규모 지역개발사업을 하려면 재정여건이 탄탄하고 관련 전문가가 풍부한 연방정부나 주 정부가 깊이 관여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주에는 세계 100대 대학이 1,2개 정도 있으며, 관련 전문가가 많아 활용하기 용이하다.)


미국은 시나 카운티(우리나라의 시나 군 같은 기초지자체) 같이 재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지자체에서 무리하게 지역개발사업을 하다 실패하면, 그 책임을 시나 카운티가 고스란히 지게 되어있다. 그 정도가 심하면 지자체가 파산할 수도 있다. 개발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시가 재정운영을 방만하게 해도 파산할 수 있다. 2020년 만해도 앨라배마주 페어필드 시가 파산했다.


필자는 C 대학을 졸업한 후, 우리나라로 돌아와 지역개발 업무를 하게 되었다. 2012년 무렵으로 기억되는데, 일본의 지역개발 정책을 조사할 필요가 있어 일본 교토를 방문했다. 교토부 지역개발 담당 공무원과 교토대학 지역개발 교수와 면담을 하면서 일본 지역개발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본과 미국의 지역개발 체계가 크게 달랐는데, 이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면담 후 일본 전문가의 안내로 현장을 돌아보았다. 초창기에는 여러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지만 얼마 후 관심이 멀어져 황폐화되어가는 시설을 방문했다. 규모가 되는 테마파크였는데 그나마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는 장소는 지역특산품과 작은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작은 상점이었다. 일본의 지역개발 전문가는 이 테마파크를 비효율적인 예산 낭비의 표본 중 하나이며, 이런 시설이 일본 도처에 있다고도 했다.

얼마 전 아시아개발은행이 2015년에 발간한 리포트(Causes and Remedies for Japan’s Long-Lasting Recession: Lessons for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를 읽으며, 교토 인근에 위치한 이 테마파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혹시 내가 일본을 장기침체로 이끈 원인 중 하나라는 지자체의 비효율적 사업을 목격했던 것은 아닐까?’


평일 방문이긴 하지만, 방문객을 보기 힘든 테마파크 (일본, 교토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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