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하야토 수상. 혼란에 빠졌던 일본을 세계 정상급 국가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 복지에도 세심한 신경 쓴 인물이다. 그는 1965년도 8월 65세로 생을 마감한다. (전술한 '망언의 정치인 이케다 하야토'를 참조하세요.)
이하는 상상에 날개를 더해 ‘아케다 수상이 환생하여 1970년 1월 1일 평범한 일본 가정에 태어났다.’라는 가정에서 글을 써본다.
새로 태어난 이케다의 유년 시절은 활기에 넘쳤다. 일본은 부쩍부쩍 성장하고, 복지시스템은 세심하게 다듬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하여 평생 고용제도로 이케다의 부모는 일자리 걱정, 돈 걱정하지 않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이케다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일본은 워크맨을 앞세워 전 세계 가전시장을 휘어잡았다. 이때는 아케다의 부모가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시기였다. 부동산 가격이 일시에 오르고 주식도 활황인 때였으니.
이케다가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일본의 경기가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게 신호탄이었다. 환율은 계속 도움을 주지 않아 수출은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시기 일본 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살려내고자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경기는 계속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어갔다.
1990년대 중순 급기야 일본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게 된다. 그러니까 빚을 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침체된 경제상황에서 빚은 점점 늘어가, 1990년 대 말 빚은 국민총생산(GDP)의 100%를 돌파한다. 이 무렵 이케다는 조금 늦은 나이에 재무부 공무원이 되었다. 초임지는 중앙이 아닌 지방이었다.
신임 공무원 이케다는 순식간에 불어난 부채에 대한 정부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겁이 덜컥 났다. 걱정과 당황스러움에 선배 공무원에게 물었다. 부채가 이리 빠르게 불어나도 되는 거냐고.
“이케다 씨는 배워야 할 게 많네. 우리 일본은 무척이나 탄탄한 나라예요. 부채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지요.”
“선배님, 부채가 국민총생산과 맞먹는다고요. 그런데도 어떻게 부채 걱정을 안 합니까? 수출도 잘 안된다는데, 이러다가 국가가 부도라도 나면.”
“걱정도 팔자네. 우리 정부는 매우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다 씁니다. 게다가 정부의 빚 상당 부분은 일본은행을 통해서 조달해요. 엔화로 말이지요. 유사시 정부가 조절할 수 있는 은행과 돈에요.”
“낮은 이자라고 하지만, 부채가 불어나면 큰 부담이 될 것인데요. 그리고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늘어나는 국가부채에 불안해하면, 이자를 올려달라고 할 테고. 그럼 정부 재정에 엄청 부담이 될 거고. 이 모든 걸 세금으로 해결해야 되고.”
“걱정 말라니까요. 일본 국채를 열심히 사주는 사람은 노인들이 많아요.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금을 막대하게 손해 본 사람들이지요. 이들이 원하는 건 돈을 늘리는 것이 아닌, 안정적인 투자처예요. 일본 정부만큼 안정적인 곳이 어디에 있어요? 그러니 그들이 이자를 늘려달라거나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케다 씨는 이런 걱정할 때가 아니잖아요. 지방에서만 빙빙 돌 건가요? 중앙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녀요?”
이 시기 일본 정치는 불안했다. 1990년부터 2010년. 20년 동안 일본 경제가 침체의 길을 걷는 동안 일본 수상은 12명이나 바뀌었다. 가장 긴 수명의 수상은 고이즈미 총리로 5년 반 동안 재임했고, 하타 총리는 두 달 남짓 단명했다. 이런 혼란한 정국에 정치인들이 시민의 입맛에 맞지 않은 정책을 할 수 있었까.
이런 상황에서 재무부 공무원이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환생한 이케다도 별 수 없었을 터이고. 고분고분하고 착실한 공무원이 되는 것 이외엔.
1998년 한국을 강타했던 아시아 금융위기(IMF). 일본은 이 시기를 무난하게 넘기고 다시금 경제가 성장할 듯 꿈틀댔다. 긴긴 잠에서 깨어날 거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일본을 강타했다. 수출물량이 대폭 줄었다. 내수규모가 작은 일본에게 수출물량이 급감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목돈이 드는 자동차 수출에 크게 의존하다 보니 그 여파도 컸다. 금융위기에 지갑을 닫은 소비자들이 비싼 자동차 구입을 미루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서 일본 경제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빚을 더 져야 했지만, 일본은 금융위기를 넘어선 듯 보였다. 그리고 다시금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할 준비를 했다. 이런 시기인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터진다. 지진이 일으킨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깨버렸다. 깨진 발전소에선 방사능이 유출되어 온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일본판 체르노빌이라 불릴 정도의 거대한 재앙이 온 나라에 불어 닥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극복하고자 막대한 국고를 털어내게 되고, 결과적으로 2013년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에 도달하게 된다. 정부는 부채로 인한 긴급상황임을 발표한다.
이케다는 긴급상황 발표에 안도를 했다. 부채를 줄일 방법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지자체의 자생력을 높이는 정책을 써서, 지자체의 부채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봤다. 더하여 고령인구가 늘면서 정부의 지출도 덩달아 늘 수밖에 없는 바, 5%에 불과한 소비세를 높일 필요성도 있었다.
중앙에서도 이케다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자체 부분은 크게 손을 대지 않고 소비세만 10%까지 늘리기로 결정했다. 시민들이 좋아하는 정책은 쉽게 할 수 있어도, 싫어하는 정책은 쉽게 추진할 수 없는 법. 눈치를 보던 정관계는 2019년 10월이 돼서야 소비세를 10%로 인상했다. 그러나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는 일본 재정을 더욱 악화시킨다. 급기야 2021년, 나랏빚의 규모는 GDP의 250% 수준까지 되었다. 소비세를 올릴 타이밍이 너무 늦은 것이다.
2020년만 해도 일본 정부 지출의 15%가 나랏빚으로 인한 이자와 원금상환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일본은행 등을 통해 초저금리로 빌리고 있다지만 국가가 이렇듯 빚으로 운영되고, 빚을 해결하려 엄청난 세금이 낭비된다면 미래가 결코 밝을 수는 없는 일이다.
환생한 이케다는 어느덧 50세가 넘는 나이가 되었다. 중앙에서 잠시 일했지만 다시 지방으로 전출하게 되었다. 일을 못해서라기 보단 경직된 일본 공무원의 인사체계와 이케다의 독특한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사실 전생의 이케다도 평생을 지방에서 떠돌다가 공직을 끝낼 처지였다. 그런 때 일본이 2차 세계대전서 패했다. 연합군은 일본 열도에 들어오자마자 중앙의 고위 관료들이 쫓아내고는 그 자리에 이케다를 앉혔다. 그 후 이케다는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되고,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번 생에선 일본이 패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이케다는 계속 지방을 떠돌 수밖에.
이케다는 다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무실에 들어와, 책상에 앉았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일상에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부채가 다시 떠올랐다. 젊은 시절처럼 순진하게 나라를 걱정하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나라 걱정을 해보았자, 무엇을 할 수 있는 위치도 처지도 아니기에 어느 순간부터 나라 걱정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케다의 머리를 복잡스럽게 하는 것은 혹시나 나라가 망해 연금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부채는 잡아야 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들은 부채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특히나 대중들이 부채에 대한 인식이 적었다. 심각한 부채 같은 걸 생각할 수 없게 대중들의 관심을 끌만한 일들을 부러 벌이고 있는 듯도 보였다. 이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 있었다. 한국이 점유하고 있는 독도문제라든지, 한국이 후쿠시마 농산물을 수입하려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대서특필한 다든지....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전문가들도 한심했다.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느라 중지를 모으지 못했다. 누구는 정부지출을 줄이는 게 우선이다. 누구는 세금 인상이 확실한 방편이다. 어떤 사람은 물가를 인상하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게 근본적인 방편이다 라고도 했다.
지방에서 일하는 관료가 정책에 무슨 힘을 보탤 수 있겠는가. 이케다는 마음 편히 먹고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닌 나라, 일본’ 슬쩍 떠올리는 것만 해도 끔찍한 상상은 접어두고서.
일본 부채는 다른 나라의 부채와 비교하기 어려운 면이있다. 국민총생산의 두 배반이 넘었는데도 나라가 멀쩡하니 말이다. 일본과 부채를 견줄만한 나라로는 베네수엘라와 그리스를 들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일본에 비해 부채 비율이 국민총생산 대비 50%가 많고, 그리스는 50%가 적다. 두 나라 모두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러, 외부의 도움으로 연명하는 처지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탄탄해 보인다.
일본은 외국에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대외순자산(일본 해외투자액에서 대외부채를 뺀 자산)이 356조 9천700억 엔에 달하는 건실한 국가다. 작년 말 해외투자액이 1천146조 1천260억 엔이다. 이는 일 년 새 5.1% 늘어난 규모이며 12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세계 최대의 투자국 중 하나다.
하지만 부채가 많은 국가의 신용도가 좋을 리 없다. 최근 일본의 신용등급은 남미 칠레와 별 차이 없는 등급이다.(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피치 Fitch). 이는 우리나라에 비해 낮은 단계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본은 우리보다 신용도가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