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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Mar 06. 2022

HACCP 이 뭔데, 뭐가 문제야?

최근 썩은 배추를 사용한 김치 논란의 중심엔 HACCP 인증이 있다. HACCP은 위해요소분석(Hazard Analysis)과 중요관리점(Critical Control Point) 합성한 단어로 식품을 안전하게 만들어내는 기준이라고 한다. 어려운 내용이다. 하지만 단박에 이해 안되도, 안전한 식품을 먹기 위해선 좀 더 상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든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자 어떻게 만들어 낸다는 건데?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 건데?라는 의문을 던지며 파고들면 세상 어려운 내용이 꼬리를 문다. 두손 바짝 들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HACCP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뭔가를 잘못했구나’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듯싶다. 2002년 HACCP을 처음 접한 필자도 그랬다.  

   

HACCP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준 것은 NASA의 우주계획이었다. 3만 6천 킬로미터 고도에서 며칠, 몇 주씩 머물며 임무를 수행하거나, 달이나 다른 행성으로 오가야 하는 우주비행사의 건강. 사람을 우주로 보내려고 계획을 세우던 NASA에서 각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었다. 우주비행사가 탈이 났다고 우주공간에 앰뷸런스를 보낼 수 없는 일이다. 식중독, 배탈. 이것이 문제였다.      


당시 연구자들이 풀어내야 했던 질문을 불러와 보겠다. 식품에서 배탈 설사를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은? 처음부터 어렵게 가지 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아마도 식중독균 같은 미생물이 아닐까? 그다음엔 독성 화학물질. 중금속 같은 것도 없어야 좋을 것이다.  연구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런 나쁜 것들을 없앨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이전에는 없던 안전하게 식품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개발해야 했다. HACCP의 탄생이다. 정리하자면 우주비행사가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우주공간에서 머물면서 양껏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식품을 만드는 방법이 HACCP이다.   

  

기술적으로 들어가자면 식품제조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위해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위해요소분석(Hazard Analysis)이다. 그리고 분석 결과를 토대로 관리를 잘하자는 게 중요관리점(Critical Control Point)이다. 합치면 HACCP(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으로 정리된다.

   

그런데 1960년대 NASA 우주계획이 시작되는 시기에 개발된 HACCP 이 21세기에도 지키기 어려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중 하 HACCP 시설에 너무 관심이 집중된 것이기 때문이 아닌지, 라는 의구심이 든다. 필자가 경험한바, 누구든지  HACCP 시설을 처음 방문하게 된다면 깔끔하고 미래적인 시설에 눈이 동그진다. ‘HACCP이 이런거구나! HACCP은 시설이 좋아야 된다는 선입관이 생길 수 있는 시작점이다. 그런데 HACCP은 시설로만 되는 게 아닌다. 사실 사람이 곱절은 더 중요하다. 거짓 없이, 꼼꼼히, 과학적으로 정해진 바대로. 하루 24시간, 1년 365일. HACCP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쉽겠는가?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이번 한 번쯤이야.'라는 마음을 먹는 순간 HACCP 은 엉망이 된다. 수백억을 투자해 만들어낸 HACCP 시설이라도 예외는 없다. 이것이 HACCP을 위반한 업체가 매년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본다.   


20년 전 HACCP을 처음 접했을 때 만났던 L 박사가 떠오른다. L 박사는 3년간 미국에서 HACCP을 연구하고 막 귀국한, HACCP 최고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HACCP 시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었다. 멋지고 깨끗한 시설이라야 HACCP이 제대로 작동된다는 논리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던 때이기도 하다. 일단 HACCP 시설을 말끔하게 새로 지으면 HACCP 이 거의 된 것이 아니겠냐라는 분위기 있었다.


 L 박사는 이런 상황을 걱정했었다. ‘HACCP은 엄청난 시설을 새로 만들어야 가능한 게 아니다. 기존 시설을 일부 보수를 해도 시행할 수 있다.’ 면서 'HACCP을 들여오기 위해선 거짓 없는 식품안전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라고 했다.


우주비행사가 안심하고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준 HACCP. 우주비행사와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주비행사가 먹는 우주식만큼 안전한 식품을 먹고 싶은 건 필자만의 바람이지는 않을 것이다.  제대로 만들어진 HACCP 식품을 시장바구니에 넣기 위해선 소비자의 관심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안전한 식품을 먹기 위해선 '제대로 된 전문인력'이 중요하다는 인식. 식품 안전엔 거짓이 먼지 한 톨만큼이라도 끼어 들어서도 안 된다는 단호함.  소비자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식품안 정책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  우리 가족들이 먹는 식품에 거짓이나, 비전문가가 끼어들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면 제2의 썩은 배추로 만든 HACCP 김치가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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