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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Mar 16. 2022

따끔 쓴 체리 맛

“입술이 따가워.” 체리 한 개를 집어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던 아내의 목소리는 불만스러웠다. “정말?” 나도 한 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하자 쓴맛이 툭 퍼졌다. 체리 맛은 따끔 쓴 맛이었다.


더 생각할 것 없이 체리가 담긴 그릇을 들어 스테인리스 보울에 부어 넣고 물을 가득 채웠다. 따끔 쓴 맛 물질을 물에 녹여내기 위해서다. 하룻밤 넘기고 다음날 아침.


“따끔한 맛이 없어졌네, 그런데 이거 농약 때문이지?”

“아마도”

“농약 안 뿌리고 체리를 재배할 수 없나?”


'농약을 안 뿌린 과일.' 화학제 건 천연물질이 건 농약을 전혀 뿌리지 않는 과일은 시중에서 찾긴 어렵다. 무농약이라 판매하는 과일에도 소위 ‘친환경 농자재’라 불리는 병해충을 없애는 물질을 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약과 효과가 유사해, EU에서는 농약으로 분류하는 물질이다. 여하튼 이런 친환경 농자재조차 1도 사용하지 않은 과일을 맛 본적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과일은 사과다.


아버님이 퇴직하시고 기거하시던 시골집. 그 바로 옆엔 방치된 사과 과수원이 있었다. 과수원 집 부부는 과수원에서 나오는 사과를 동네분들이 마음껏 맛보도록 개방했다. 농약도 비료도 아무것도 주지 않아 별거 있겠냐 싶겠지만, 가을이 되면 작고 단단한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동네 주민, 벌레, 새, 곰팡이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한쪽면은 말짱한 데 다른 쪽은 벌레가 야금야금 파 먹은 사과가 대부분이었다.  운이 좋으면 전신이 말끔한 사과를 찾기도 했다. 그 단단한 식감과 향. 오로지 농약과 비료를 머금지 않은 사과에서나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과는 시중에 나올 수 없는 걸까? 유기농업 전문가에게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답변은 의외였다.  유기농 전문가에 따르면 볼품 없는 유기농산물은 소비자가 찾지 않는단다. 그러니 유통업체가 찾지 않고, 학교 영양사도 찾지 않는다.


아무리 유기농 철학으로 무장한 사람이라도 소비자가 찾지 않는 농산물을 재배할 수는 없다. 팔려야 먹고 살 것이 아니겠는가. 시장에선 깨끗한 표피에 탐스런 과육과 달콤한 맛의 과일을 원한다. 그러니 농민 입장에선 벌레나 미생물이 깔끔하게 죽어 나가게 하는 농약과, 과육을 풍성하게 부풀리고 맛까지 좋게 하는 화학비료를 듬뿍치는 게 이득을 내는 정답인 셈이다.


어찌 보면 농민에겐 다행스러운 상황일 수도 있다. 농약 없이 농사를 짓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말로는 안전성을 외치는 소비자라 해도 실제로는 깔끔한 외모에 그럴듯한 식감의 농산물을 원하니 말이다. 지긋지긋한 벌레도, 짜증을 유발하는 잡초도, 역겹기까지 한 곰팡이도 한번 뿌리면 싸악 가시게 하는 농약.


그런데 벌레나 잡초를 죽이는 물질이 사람에겐 안전할까? 작게는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고, 심각하게는 암까지 유발하는 게 농약이다. 그러니 농약을 담뿍 친 농산물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속으론 독을 품고 있는 셈이다. 화려한 외모의 독버섯처럼.




농약은 적정량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필수 화학물인 바, 건강에 나쁘다고 모든 농약의 사용을 금지할 수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인체에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 농약사용량을 정했다.


그런데 그 기준은 우리나라 기준, UN기준, EU 기준, 미국 기준이 제각기 다르다. 나라마다 국민이 주로 먹는 농산물의 종류, 평균 체중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과에 A란 농약을 뿌린 다고 가정할 때, 사과를 많이 먹는 나라에서는 A 농약의 안전기준을 엄격히 하고, 적게 먹는 나라에서는 그 기준을 느슨하게 한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세대에 따라 섭취하는 농산물의 종류가 다르고, 체격도 차이 난다. 채식주의자는 과일을 더 많이 섭취할 것이고, 육식을 주로 하는 사람은 과일 섭취가 적을 것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과학 발전에 따라 과거에는 해가 없다고 판명된 농약이 나중엔 발암물질로 밝혀진 경우도 있다. 알면 알수록 셈법이 복잡해지는 게 농약안전사용기준이다.


여하튼 현재 이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지는 정부에서 정한 농약안전사용기준을 따르는 것이다.  이는 최소한의 안전성이 보장된 농산물을 먹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따끔 쓴 맛 체리는 뭐냔 말인가?


모든 농업인이 양심적이긴 어렵다. 양심적으로 농산물을 재배한다 해도 토양에 남아 있는 과거의 농약성분, 물로 들어오는 농약, 옆 집에서 뿌린 농약이 날아오는 경우... 생각하지도 못한 농약성분이 농산물에 침투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농약안전사용 기준치가 넘는 농산물이 소비자 장바구니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아니 정부에서 세심하게 조사해서 농약 덩어리 농산물을 시장에 못 나오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세금은 이런데 쓰라고 내는 거지!’


현재 우리나라는 한 개의 농산물을 대상으로 463가지의 농약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그 비용이 20-30만 원 수준이며, 숙련된 분석 전문가는 필수다. 현재 1년에 약 6만 점의 농산물을 검사하고 있는데, 얼추 계산해도 적지 않은 예산과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현장에서 농산물 샘플을 채취하는 인원까지 고려하면.. 한정 없이 농약검사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같은 선진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 나라에서도 농약덩어리 농산물이 시장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선진국이 왜 선진국이겠는가. EU, 미국 정부는 소비자 스스로 농약덩어리 농산물을 퇴출시킬 수 있는 방편을 운영하고 있다. 농약 검사 결과를 매년 발표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2019년 신선채소인 ***을 조사해 보니, 37.9%가 농약안전사용기준을 넘었다. 주로 먹는 과일인 @@@을 조사해 보니 농약안전사용기준을 넘은 농산물 목록에 없다.’ 이런 정보는 대통령부터 시민까지 모두 접근할 수 있다. 심지어 바다 건너 나라에 있는 필자도 이 정보를 찾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아니 ***의 37.9%가 농약안전사용기준을 넘는다고? 시장에서 사는 *** 3개 중 적어도 하나가 농약덩어리란 말이지!'  많은소비자는 ***을 외면할 것이다.


소비자가 외면하면 유통업체도 외면하고, 결국 시장에서 ***을 팔려면 농약을 안전하게 사용해야 한다. EU는 한발 더 나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EU에 수입되는 농산물 안전성을 수입국별로 조사하여 발표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위와 같은 표를 보고, 안전한 수입 농산물을 구입 할 수 있게 된다. 필자라면 호주와 뉴질랜드 농산물 구입에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라오스와 말레이시아 농산물에는 손이 가지 않을 듯.


유감스럽게 우리나라에선 이런 정보를 시민이 접할 수 없다. 필자가 시중에 유통되는 체리의 농약 안전성이 어떤지  알고 있었더라면 따끔 쓴 맛 체리를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항암치료를 끝낸 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농약이 덕지덕지 할 거라 의심되는 농산물을 구입할 이유는 1도 없다.


우리는 언제나 EU나 미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수준의 농약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이번 정부에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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