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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Sep 14. 2020

사실 결혼보단 같이 있고 싶어

미국 시리즈 '모던 패밀리' 시즌 8, 18화에서 헤일리가 청혼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반지를 기쁘게 받았고 청혼도 승낙했지만 헤일리는 곧바로 패닉에 빠진다.

"모든 여자들이 원하는 거잖아. 평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그 서약을 하는 거. 물론. 난 아직도 너무 어리고, 앞으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든 일들은 하지 못하겠지만. 첫 데이트, 첫 키스, 날 보고 반해서 나를 집으로 데려다 줄 사람도 없겠지..(왜 이렇게 덥지?! 나만 덥니? 창문 좀 열어줘!!)"


독일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코로나가 심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잠시지만, 강제적으로 일을 쉬게 된 남자 친구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 또 얼마나 자주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올해 혼인신고를 하고 남자 친구가 독일로 넘어오는 일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그토록 바라 왔던 순간이 이런 식으로 찾아왔다. 내가 진정 원하던 것이 결혼이던가?


우린 이미 지난번 혼인신고 실패 사건을 기점으로 결혼은 최소 1년 뒤로 미뤄두었다. 나의 부모님이 남자 친구를 못 미더워하는 것은 경제적 문제가 큰 이유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것은 엄마가 '딸의 남편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남자 친구와 결혼한 친구의 어머니는 또 그 나름대로 열등감에 휩싸여 친구를 괴롭게 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 '이라는 타이틀이 엄마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었던 것인가. 최소한 나의 엄마의 경우엔 그랬다. 남편에게서는 채울  없는 기대와 사랑을 ' '에게서 채워왔으니. 그리고  딸과 자신을 종종 동일화해온 만큼 딸의 결혼도 당신의 결정대로 진행되어야 했다. 결혼이라는 주제를 계기로 나의 주체성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고, 자연스레 결혼에도 마음이 멀어졌다.


어쨌든 이번에 남자 친구가 독일에 오겠다고 결심한 계기도 사실은 엄마의 끈질긴 종용 때문이기도 했다. 심지가 굳은 친구이지만 옆에서 계속해서 '독일로 가서 xx좀 보살펴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하는 엄마가 없었다면 올해 독일로 넘어올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 수 있다. 엄마에게 나는 '자랑스럽게 잘 키운 딸' 이기도 했지만 '아픈 딸'이기도 했다. 코로나로 왕래가 어려워진 요즘 내게 올 수 있는 사람은 남자 친구뿐이었으니 엄만 내가 결혼하기를 바랐다. 되도록이면 잘 사는 남자와 했으면 했지만.


결국 이번에 결혼하게 된다면 그것이 우리의 결정인 걸까, 부모님의 결정인 걸까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독일에서 박사를 하고, 장학금을 받고 남자 친구까지 데리고 오는 건 분명 나의 계획이었다. 부모님이 계속해서 태클을 걸어올 테지만 나와 남자 친구의 영역을 잘 지켜내는 건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었다.  


엄만 내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이미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였지만, 엄만 또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결혼하면 남자 마음은 바뀐다.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지? 다섯 달도 못 가서 결혼한 걸 후회할 거다." 난 나름대로 마음속 방어막을 치지만 같은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듣는다면 가지고 있던 신념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난 정말 결혼하면 불행하게 될까?'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결혼이 여성에게 득이 될 건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한국에서 기혼 여자 친구들을 만나면 남편 가족들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 육아 스트레스, 자꾸만 강요되는 희생 같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느새 여성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신화처럼 되어버려 이젠 하나도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결혼은 여성에게 하나도 달갑지 않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주입식 교육도 이젠 틀렸다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아무리 개인은 잘하려 해도 사회 구조가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정해버린 이상 결혼이 조화롭게 행복하긴 글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결혼하기 전 두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고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배경을 어떻게 타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혼하면 여자만 손해'라는 말은 결국 이 사회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젠더의식과 사회구조 때문이다. '남자는 결혼하면 결국 변할 거고', '남자는 바람피우는 동물',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서 식구를 먹여 살려야지' 이런 후진적인 젠더의식도 결코 당연하거나 본성적인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 내게 단단한 소리로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난 아직 조금 덜 살아서 의심이 들 때가 있으니.


 이상 어릴  보았던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사랑 이야기가 우리네 완벽한 이상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는' 이런 말도 믿지 않기로 했다. 사람  사람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다.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 나도 그를 존중하기로 마음먹고 우린 앞으로의 삶을 약속한다. 일방적인 착취가 없는 그런 관계를 살기로 한다. 그렇다면 결혼도 괜찮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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