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kim Nov 11. 2020

21세기의 신부에게도 보호자가 필요한가요

"내가 이러려고 너를 삼십 년 동안 키운 줄 아니"

근 몇 년간 정말 자주 들은 이야기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고기를 얻기 위해 길러진 한 마리의 가축이 된 생경한 느낌을 받는다.


남자 친구가 생기고, 또 그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고 그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 결혼 준비는 몇 번이나 엎어졌는데 그때마다 부모님의 반대 이유는 달랐지만 결국 잘 들어보면 한 가지로 압축되었다. 남자 친구가 결혼하고 나서 나를 먹여 살리기 어려워 보인다는 이유였다.


물론 그랬다. 나는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고, 결혼하면 남자 친구도 독일로 데려가고 싶었으니까 남자 친구가 독일에 가자마자 경제활동을 하기란 어렵다. 내가 받고 있는 장학금 재단에서 가족이 독일로 함께 오면 추자 장학금이 지급되기에 남자 친구의 어학과 독일에서 생활을 적응할 때까지 시간은 별 걱정이 없었는데 정작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나의 부모님이었다. 신부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지 그 반대의 역할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결혼하고 우리 부부가 내가 받는 돈으로 생활하는 건 옳지 못한 거였고, 여자가 고생하는 게 빤한 삶이었다. 힘들어서 박사 학위도 받지 못할 거라는 주변의 성화도 한몫을 했다.


어릴 적엔 몰랐는데 대학을 넘어서면서 여성이라는 정체가 자꾸만 내게 벽으로 작용했다. 남성과 다른 "몸"을 가진 여성이라는 건 어릴 적부터 늘 듣고 자라왔지만 그 말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나를 좌절시키는 말인지를 깨닫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공부와 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자꾸만 좌절했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 "결혼을 앞둔 딸"이란 존재인 나는 무능한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조선의 삼종지도 (三從之道)는 여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를 말했다. 어려서는 아비를 따르고, 혼인해서는 지아비를,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했다. 여자의 정체성은 투명했다. 오늘날 더 이상 그런 개념은 없다고 부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과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여자의 정체성은 '아들의 어머니' 혹은 '자식의 어머니'였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엄마가 내게 자주 했던 "내가 이러려고 너를 고이 키운 줄 아니"라는 말은 내게 꼭 부모님은 처음부터 나를 좋은데 시집보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키웠다는 잔인한 말로 들린다. 물론 그게 사실을 아니라는 것을 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으로 기르셨고, 내가 결혼하고서도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가지셨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좋은 집안에 시집보냄으로써만 채울 수 있는 허영심을 가슴 깊이 품고 계셨으리라. 조선의 상류사회에서는 연애 혼이 금기시되었는데, 그것은 혼인이 가문 보존의 목적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장병인 2018). 여성은 주체적인 인물이 아닌 어떤 면에서 매개체 역할에 그쳤다. 만약 부모님도 자신의 욕망을 오래전부터 명확히 직시하고, 또 이루기 원했다면 차라리 내게 결혼의 목적을 어릴 적부터 교육하는 게 빨랐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난 결혼이 두렵다. 결혼을 하고 싶지만, 또 한편으론 평생 미루고 싶기도 하다. 행복한 커플이 결혼을 했지만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결혼과 패키지로 딸려오는 모든 현실적인 고민들이 두렵다. 남자가 돈이 많으면 편하고 좋겠지.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바람처럼 결혼을 통해 새로운 보호자를 찾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눈을 의식해 결혼하고 싶지도 않다. 조선에는 삼종지도가 아주 당연한 진리로 통했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듯이, 내 생각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Reference

장병인 (2018), 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 여성의 삶, 휴머니스트.

매거진의 이전글 사실 결혼보단 같이 있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