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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Apr 06. 2017

긴 여행의 시작

독일에서의 세 달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지낸 적이 얼마만이던가.


지난 1월 석사 논문을 마치고 바로 인턴을 시작했다. 그리고 인턴을 그만둔 게 3월이다. 종합 선물세트 같은 염려와 부당함에 스스로를 옥죄어왔던 시간이었다. 독일에 있는 친구에게 4월에 독일에 가서 어학연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선뜻 자신의 부모님에서 함께 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었다. 독일 사람들의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선뜻 승낙. 어느새 지금 독일에 와 있는 거다. 

친구 집 정원. 진짜 닭이 아니라 조각상이다. 
내가 앞으로 머물게 될 방


내방 창문에서 보이는 벚꽃

어제 드레스덴에 도착했고, 오늘 오전에는 여유롭게 슈퍼마켓을 들렀다가 친구의 가족들과 점심을 먹었다. 내 친구를 포함해 친구의 부모님 세명 모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친구 엄마는 오늘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퇴근해 내게 마을을 구경시켜주었고 친구 아빠는 12시쯤, 친구는 오후 2시쯤 퇴근해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여유로움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친구 집 정원


지금 친구와 친구 부모님은 모두 낮잠을 자고 있다. 보통 2-3시쯤 퇴근하고 와서 낮잠을 자고, 그 이후 시간은 여유롭게 수업 준비, 정원 가꾸기, 가족과의 시간으로 보낸다. 4년 전쯤 친구네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집에 딸린 정원에 놀란 기억이 있다. 정원이 어찌나 큰지. 100평이 넘어 보였다. 그리고 꽃과 나무는 언제 그렇게 예쁘게 심었을까. 삶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번에도 다름없었다. 


잠시였지만, 내가 인턴으로 일했을 때 보통 집에 돌아오면 저녁 9시였고, 피곤에 절어있었지만 어쨌든 좀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새벽 1시까지 깨어 있었다. 너무 피곤해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었고, 자기 계발도 하지 못했다. 그냥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티비를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시작한 많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경험이 최악의 사례가 아니었다. 새벽에 퇴근하는 친구도 있고, 주말 출근을 밥 먹듯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아무튼 대부분의 친구들이 자기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정시에 퇴근하는 게 정상이 아니라, "일이 끝나면" 퇴근하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개념이 박힌 직장인으로 분류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난 계속 버텨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앞으로 세 달 동안 이 집에 있게 된다. 난 무엇을 더 배우고 생각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내가 이 시간을 낭비할까 염려했는데 오히려 여기 오니 그런 걱정들이 사라졌다. 

이 시간을 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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