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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Apr 11. 2017

독일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유럽에 오면 늘 처음 고생하는 건 시차 적응.

큰일이다. 독일 시간으로 오후 7시 정도가 되면 정말 피곤하고 머리가 굳어버리는 것 같다. 

몇 번은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 적도 있다. 새벽에는 다섯 시쯤 한 번 깨고 다시 잠이 드는데, 그래도 새벽에 별로 깨지 않고 잘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내가 잠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시차 적응을 빼면 그래도 독일 생활 적응을 천천히 잘하고 있다. 독일어를 조금씩 배우고 있고, 엄청 길치인 나이지만 마을 지리도 조금씩 익히고 있다. 이제 집에서 드레스덴까지 기차를 타고 혼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이 보기에는 시골마을이다. 풀밭에 소도 있고, 말도 있고 염소도 있다. 그렇지만 내 친구의 눈에는 약간 작은 마을이지 시골까지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지내고 있는 이 곳 라데보일(Radebeul)이라는 마을은 드레스덴(Dresden)에서 기차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드레스덴은 독일의 동쪽 작센(Sachsen) 주의 주도이고 도시 어딜 걸어 다녀도 영화 한 장면이 될 만큼 예쁜 도시라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약 500km 정도를 가면 함부르크가 있고, 옆에는 마이센(Meißen)이라는 도시가 있다. 마을에는 엘베강이 흐르고, 그 강을 끼고 자전거를 타면 다른 도시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 


엘베강을 끼고 자전거타는 사람들

독일에서 첫 주말을 보냈다. 독일에서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문화는 당연한 것인데, 특히 일요일은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 가족들은 다른 일을 재미난 일들을 하는 것 같다. 

토요일에는 쇼핑을 하기도 하지만 일요일에는 집에 있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 독일에 살고 있는 친구가 이곳의 노동환경은 좋지만 가족과 함께하지 않으면 외롭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가족이 없는 독일은 외로울 것 같았다. 기독교 국가인 독일은 일요일을 경건하고 조용히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 잔디도 깎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주말은 철저히 가족과 함께였다. 자전거를 타러 나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가족 단위로 보였다. 아빠가 아이들을 태운 수레를 자전거에 연결해서 다니고 엄마가 다른 자전거로 그 뒤를 따르는 형태였다. 나 또한 독일에서 지내는 내내 친구들의 가족들과 함께하는 주말을 보낼 것 같다. 별것 하지 않고, 느긋한 가족 식사. 정원 가꾸기. 이야기. 가끔은 하이킹을 하면서. 


아마도 가족이 없거나, 가족들 간의 유대감이 튼튼하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경험한 독일의 주말과는 다른 주말을 보내고 있겠지. 이곳 삶의 형태가 최선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아마 여기에서도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다만 주말에 내 시간을 가지는 것, 그래서 가족이 있다면 가족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지난 주말은 날씨가 정말 좋아 마을 한 바퀴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사람들이 집 밖에 많이 나와있었다. 대부분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평일에도 집에 돌아오면 사람들은 정원을 가꾸는데 한두 시간을 투자하던데, 주말에는 더 오랜 시간 정원을 가꾸었다. 덕분에 이곳의 정원은 하나같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독일 사람들에게 정원은 어떤 사명감 같았다. 


친구 집 정원에 핀 벚꽃
조용한 엘베강
자전거를 타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 사람들의 주말에 참여하면서 문득 내게 강요되었던 회사에 잠식되었던 나의 삶이 서러워졌다.


딱 필요한 만큼의 노동시간만을 가지고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에 집에 돌아와 여가시간을 보내는 삶을 우리나라에서 꿈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주말에 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저녁까지 야근을 하는 게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이기적이고 당돌한 걸까. 저녁이 있는 삶,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한국에서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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