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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Apr 18. 2017

독일에서 보낸 부활절

가까이서 살짝 들여다본 독일 일상



독일에 오기 전부터 부활절 휴일이 곧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친구들은 가족들과 오붓하게 보내야 할 테고 난 뻘쭘한 처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영국에 있는 친구에게 미리 연락을 해 두었다. "부활절 휴가 낼 수 있지? 베를린에서 보자!" 

그런데 베를린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나를 거둬주고 있는 친구 S가 부활절 가족모임에 나를 초대했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나의 일정이 겹치게 되었고 나의 부활절 휴일 스케줄은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화요일부터 금요일: 베를린 여행

토요일 오전: 베를린에서 친구 S의 할머니 댁으로 기차 타고 이동. 


부활절을 맞아 친구 가족들은 조부모님 집에 가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나도 여기 초대받아 함께 이틀을 보냈다. 독일식 부활절을 오롯이 보낼 수 있었다. 독일에서 부활절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가족들이 한데 모이는 명절이다. 크리스마스처럼 큰 명절까진 아니지만 중요한 날이다. 부활절 명절에는 우리나라 추석처럼 조부모님의 집에 가기도 하고 친척들끼리 모여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친구네 조부모님은 Sachen-Anhalt 주에 속한 Zerbst라는 마을에 살고 있다. 베를린에서 Zerbst까지는 기차로 세 시간 정도 거리다. 친구의 부모님은 같은 마을에서 살아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초등학교도 같이 나온 친구 사이란다. 친구의 외조부모님과 친할머니 집은 같은 동네 오 분 거리. 할머니네 댁에서 나까지 지내기엔 친척들이 너무 많이 모여 방이 모자랐기 때문에 나는 친구와 함께 친척 이모 집에서 지냈다. 친척들이 고만고만한 거리에서 가까이 살고 있었다. 


친구네 할머니 집에 도착하니 친구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친할머니, 작은아버지 가족들, 친구 가족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내가 제일 마지막에 도착한 손님이었다. 처음 만났고, 다들 영어가 서툴러 말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S의 친구라는 이유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다음날 저녁 가족모임에서는 심지어 더 많은 친척들을 만나고 왔다. 헥헥. S를 함께 아는 다른 친구 E에게 말했더니 "넌 S랑 결혼해도 되겠다, 상견례한 것 같네 흐흐". 



내 친구 친할머니네 집. 할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신데 어쩐지 정원을 보면 할아버지의 손때가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도 할머니가 적적하실까 봐 사돈 되는 친구의 외할머니는 가까이 사는 조카들과 티타임을 가질 때마다 할머니를 초대한다고 한다. 


근처에 살고 있는 친척들이 많으니 병원을 가거나 할 때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이사도 잘 가지 않아 이웃들도 모두 몇십 년 동안 서로 알고 지낸 사이. 따로 공동체를 만들 필요가 없이 이 자체가 공동체였다.

독일도 큰 도시로 나가면 이웃끼리 잘 알지도 못하고 가족들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적어도 여긴 가족끼리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한 마을에서 함께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이 많은 마을이 되었나.  


부활절 계란 만들기


부활절 계란 만들기는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부활절 명절 동안 많이 한다. 난 여기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독일 문화에 생소하니 나를 위해 가족들이 부활절 계란을 만들었다. 먼저 계란을 삶고, 삶은 계란을 따뜻한 물에 풀어둔 염료에 넣어두면 계란 겉표면이 염색된다. 식용 가능한 염료라니 계란을 염색한 후에 먹어도 된다고 한다. 


어느 집에 가더라도 부활절이 가까워오면 독일 가정에는 이런 부활절 계란과 계란 모양의 초콜릿이 있다. 부활절 토끼(Easter bunny)가 부활절이 되면 부활절 계란과 선물을 가져다줄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아이들은 부활절 토끼를 정말 믿는단다. 


부활절 계란 만들기 말고도 부활절 토끼가 가져다준 선물을 찾으러 보물 찾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한 활동인데 이번 명절에는 내가 있어서인지 친구 언니가 이벤트로 준비해 주었다. 그래도 난 처음이어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예쁜 문구류를 선물 받았다. 호호. 


명절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가족끼리 둘러앉아 하루 종일 먹다가 끝나는 것 같다. 

독일에서 보통 먹는 식사 모습이다. 이날은 가족들이 워낙 많으니 탁자에 접시가 가득 차긴 했지만 보통 저런 메뉴로 식사를 하는 것 같다. 빵에 버터를 바르고, 치즈나 소시지와 함께 먹는다. 이날 토요일 저녁식사를 시작으로 명절 내내 끊임없이 엄청난 식사를 했다. 



밤이 되어서 bonfire를 구경하러 가족들과 함께 나왔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모여 몇 시간이고 불을 구경했다. 뭐가 그렇게 이야기할게 많을까. 근데 독일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이 작은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아마도 가족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친구네 엄마가 이야기했다. 



다음날에는 점심이 되자마자 가족들 모두(대가족!) 뷔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독일 사람들은 외식을 별로 하지 않지만 일요일이나 명절에는 밖에서 종종 이렇게 특별한 식사를 한다. 뷔페에서 배가 땅땅하도록 가득 차게 식사를 한 후 우리가 간 곳은 카페였다. 식사를 했으니 당연히 달달한 디저트를 먹어야 한다는 건 독일 사람들에게 명제 같은 것. 디저트까지 먹고 나서 두 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친구의 다른 친척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엄청난 명절이었다. 


명절은 어느 나라나 즐겁기도, 우울하기도 한 것 같다. 찾아갈 가족이 없다면 혼자 외로운 시간이 될 수 있다. 내가 만약 여기에서 혼자 지내는 유학생이나 직장인이었다면 우울한 명절이었을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슈퍼마켓도 다 문을 닫으니 먹을거리도 미리 장만해 두어야 하고 꼼짝없이 삼일을 집에 갇혀 있었겠지. 


처음 독일에 간다고 이야기했을 때 한국의 친구들이 독일 사람들은 좀 냉정하지 않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만난 친구의 가족들은 정이 많았다. 친구 할머니는 명절에 놀러 온 손녀딸에게 용돈을 주려고, 그리고 그 손녀딸의 친구인 나에게까지 용돈을 주려고 손을 뻗었고 내가 우리 할머니에게 그러듯 내 친구도 그런 할머니를 말렸다. 집에 돌아갈 때는 우리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을 흔들었고 우리도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어댔다. 가족끼리 만나면 반갑고 또 헤어지면 안타까운 것도 우리들이나 그들이나 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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