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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Apr 19. 2017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취약한 위치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소수의 입장에 서 있다는 생각은 자주 하지 못했다. 소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차별과 배제도 난 아마 많이 지나쳤겠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해야 할 때뿐이었다.


그렇지만 해외에 있을 때면 소수자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다가온다. 난 외국인이고, 독일어를 하지 못하고, 아시아인이고, 여성이면서 채식주의자이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독일인에게는 이런 특성만이 나의 정체성을 설명해줄 것이며, 동시에 나를 취약한(vulnerable) 소수 집단에 소속시킬 거라는 상상을 자주 한다.


가끔은 한국에서도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위협적으로 인식될 때가 있었다. 늦은 밤 시간, 편중된 성비를 가진 학계 등 물리적 공간에서도 사회적 공간에서도 말이다. 그렇지만 그게 다였던 것 같다. 난 많은 면에서 한국 사회에서는 "다수"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성애자, 비 장애자,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한국인, 대학교 교육을 받은 학생. 그래서 소수에 속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낌인지를 자주 잊고 살았다.


대학생 때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일 년간 다녀왔다. 그때 내가 아시아인의 얼굴을 가진 사실이 다른 유럽인들이 나를 차별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는 내 외모가 '낙인'이 되었고 나는 그 낙인에서 자유롭기 위해 다른 친구들에게 더 밝은 가면을 쓰고 몇 배 더 노력하면서 다가가야 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내게는 나의 인종이 낙인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나를 그대로 보아주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이상 나의 인종을 낙인처럼 느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여기 독일 사회에서는 '소수 집단'에 속한 사람인 것을 인식하고 있다. 2주 전쯤 나의 독일인 친구 커플과 다른 독일인 친구들을 만나 저녁 시간을 보냈다. 작은 마을에서 음악 페스티벌 같은 것이 열려 마을 전체를 돌아다니며 음악을 들었다. 친구의 남자 친구는 거기에서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길을 느꼈다고 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남자 친구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니 그 사람들이 나를 민망하게 빤히 쳐다보긴 했나 보다.


지난주 부활절 휴일 때는 친구 가족들과 뷔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거기에서 친구가 손님 중 한 명이 나치 추종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사람이 한 문신의 내용으로 알 수 있었다고 했는데 나로서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리게 되는 나 스스로를 보면서도 놀라웠다. 독일인이면서 금발 여성인 내 친구는 그 사람을 보면서도 두려움보다는 짜증과 한심함을 느꼈겠지만 난 해코지나 당하지 않을까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 사람은 실제로 나에게 아무런 해를 미치지 않았지만 난 내 스스로가 '소수자'라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 사실이 나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왔다.


독일인 친구의 집에서 친구의 가족들과 있을 때는 그들이 제공하는 보호 테두리 안에서 느끼지 못하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집 밖에 나가면 느낄 수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유럽에 가서 동일한 경험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난 자연스레 우리나라에 있는 '소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장애인, 성 소수자,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 외국인 노동자.. 그런 사람들에게 너무도 매정하고 배려가 없었던 것 아닐까.



학교라는 집단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따돌림당하고, 조금만 "정상"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면 무시하는 모습을 난 청소년기 내내 들었고, 또 보았다.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된 청년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보았다. 왜 그렇게 우리는 정상적인 것에 집착하는 걸까. 정상이니 비정상이니, 다수이니 소수이니 모두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빚어지는 것뿐이다.

 


우리는 모두 한국이라는 조그만 땅 덩어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소수집단에 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않는가.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당신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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