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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Apr 24. 2017

여행에도 삶처럼 무료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여행의 마음

여행을 시작하면 매너리즘이 찾아오곤 한다.

일상에서 몸의 한 부분처럼 가지고 살아가는 걱정과 불안이 여행지에서는 많은 부분 잊혀진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평화와 즐거움만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다 보면 무료함이 슬금슬금 물든다. 


타지에서 겪는 외로움과 무료함은 내게는 익숙하면서도 두렵게 느껴진다. 무료함이 찾아오면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더 적극적으로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아마 이 느낌은 한 여행지에서의 생활이 길어지거나 유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이 익숙한 느낌은 '아, 내가 또 지금 매너리즘에 빠졌나 보다'라고 깨닫게 한다. 


ⓒKimkim


어느덧 독일에 온 지 3주가 되어간다. 이제 독일어 학원에도 등록해서 독일어 공부도 시작한다. 친구 집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졌고, 주변 지리도 많이 익혔다. 아침에 슬슬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빵을 꺼내 먹는 일도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익숙해진 만큼 처음 먹었던 마음이 멀어졌다.


여행지에서의 삶이 무료해지면 난 보통 그 마음을 억지로 돌리려 하지 않는다. 이미 유학 생활 동안 몇 번 해 보았는데 마음이라는 건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럴 때는 조금 쉼표를 가지면서,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해 왔던 것들은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지금까지 하던 일들을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하다. 사실 멈추지 않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이런 기본적인 일들을 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내 상태를 인정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Kimkim

내게 마음이 무료할 때 함께 찾아오는 기분은 불안함이다. 불안해진다. 내가 이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을까 봐. 그런 불안함은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찾아온다고 하던데. 나약해진 순간이기에 불안함은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 모든 생각과 기분을 차분히 끌어안고자 한다.


ⓒKimkim
ⓒKimkim

어쩜 이렇게 아름답고 감사한 순간에 매너리즘에 빠지냐고 묻는다면 난 죄송하게도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죄책감은 가지지 않을 거다. 내 마음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감사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 여기 독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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