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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Oct 10. 2020

독일에서 인문학 박사생으로 살기

한국에서 학사도, 석사도 사회과학을 전공하면서 한 번도 앞으로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물론 난 사회학을 사랑한다. 그것도 큰 이유이겠지). 한국에서 인문학을 전공한다는 건 내게 너무 리스크가 커 보였다. 안 그래도 지금 하는 공부 또한 전망이 밝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거기에 인문학 전공으로 마무리를 장식한다니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다. 난 내가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예상하지 못한 채 지금의 지도교수에게 컨텍을 했고, 한국학을 선택했다. 사회학과 한국학은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에 학자들 사이의 교류도 잦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졸업논문의 주제도 한국학과에서 공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한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지금의 학교는 인문학 성격이 짙은 한국학과이고, 나 또한 이제는 인문학 박사생이 될 것이라는 것, 그걸 간과했다.


그래서 독일에서 인문학 박사생이 된 것을 후회하는지?

아니, 다행히 아주 잘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진행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안전하고 잘 알려져 있는 것이

1.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월급을 받는 방법

2. Structured PhD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미국이나 우리나라 식 박사과정)에 지원하는 방법 - 대부분의 structured phd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3. 장학금에 지원한다 - 정당/DAAD, 우리나라 장학재단 등등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이렇게 세 가지로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나의 지도교수님은 내가 학과를 지원할 때부터 내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장학금이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Ruhr 지역 대학들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나의 논문 주제와 맞지 않아 지원할 수도 없었다. 장학금은 DAAD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독일어가 뒷받침되어야 지원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내게 DAAD는 기대하지 말라고 하곤 했다. 인문학 학생이 장학금을 받기는 아주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거기에다 '한국학'이라니.. 그렇지만 '카더라'는 대게 정확한 근거를 가진 말이 아니다. 다행히 DAAD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재단에서 제공하는 여러 프로그램에도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중요한 건 잘 짜인 연구계획서와 나 스스로도 설득시킬 수 있는 '내가 선택한 학문의 이유'였다.


따로 연구 프로젝트가 주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 학과가 돈이 많아 박사생들에게 연구실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난 보통 집에서 공부를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뭐 하는지 모르는 백수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강아지가 없었더라면 이틀이고 삼일이고 집에서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처럼 코스웍이 있는 것도 아니라 학교에 갈 필요도 그다지 없고, 가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일이나 사람을 만나러 학교에 갈 뿐이다. 대부분의 업무는 온라인에서 해결된다. 점점 집순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 이유는 '나의 연구가 진척되는 것이 나의 일'이라는 정당성을 심어주는 장학금 때문이랄까. 내가 백수가 아닌 이유는 좋아하고 열정을 가진 연구를 함으로써 지원금을 받기 때문이고, 그 사실이 내게 큰 힘이 되어준다.


코로나 시기가 아니었다면 유럽 중앙에 있는 독일에서 공부하는 만큼 여러 나라에서의 워크숍이나 컨퍼런스에도 자주 참가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올해 초에만 해도 부다페스트와 파리, 트리어에서 컨퍼런스와 워크숍, 콜로키움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미뤄진 상태이다. 하지만 컨퍼런스들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이 모든 행사에 잘 참석할 수 있다. 졸업논문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주제의 연구도 병행할 수 있다는 점도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하는 박사생의 장점이다. 지금부터 졸업까지는 자유롭게 나의 지적 세계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지도교수님은 내가 계획하는 일을 대게 지지해주시고 도와주시는 편이라 모두 가능 일이기도 하다 (지도교수를 잘 정하는 것도 대학원 생활에서는 아주 아주 중요하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보면 지금 같은 여유와 자유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아마도 실적을 내는 것이 너무 중요해 늘 허덕였을 것 같다. 물론 모든 박사생들이 그렇게 공부하지는 않겠지만 아쉽게도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면 그렇게 생활하지 않고도 모두 이뤄내기란 어려웠을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지도교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글도 올리고 싶다. 나의 연구를 항상 존중해주시고 (허접할지언정) 나를 늘 지지해주시는 교수님의 지도 스타일은 나와 잘 맞는다.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존중받을만하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 더 좋은 연구 결과를 내놓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인문학에 대한 존중과 가치를 느끼게 된 것도 교수님을 통해서였다.


독일에서도 인문학을 하는 건 위험부담이 존재한다. 앞으로의 장래가 반짝반짝 밝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이 가진 연구 주제에 대한 확신이 있고,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독일은 인문학이라도 박사 생활을 하기에 아주 좋은 곳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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