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을 때는 독일의 코로나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늘 하면서 독일의 상황을 걱정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돌아와 생활하니 큰 불편함은 없었다. 12월부터 록다운이 심화되어 여행도, 쇼핑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덕에 집에 틀혀박혀 핑계 없이 공부만 해야 하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학교도 가지 않고, 매일 강아지 산책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마트에서 장을 봐오는 일상은 그다지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고 오히려 규칙적인 일상에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주변 학부생 친구들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이미 한국에 돌아가서 생활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한국보다 독일에 남아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독일은 학비가 없기 때문에 많은 유학생들이 부모님께 약간의 돈만 지원받거나, 생활이 넉넉지 않은 학생도 일단 와서 알바를 하면서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 H도 그런 케이스였다. 하지만 코로나는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들었다. 일단 알바를 하던 가게,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H는 일자리를 잃었고 학업과 병행할만한 일자리를 다시 찾는 건 너무 어려웠다. 이제나, 저제나 나아지려나 겨우 겨우 버텼지만 쫓기듯 한국행을 선택해야 했다. 지난번 중고책 거래를 하느라 만났던 남학생도 생활비가 떨어져 한국으로 돌아간다 했었다. 다시 독일에 돌아오려면 천만 원은 넘는 돈을 슈페어콘토에 넣어와야 할 테니.. 한국에 가서 독일에서 생활할 돈을 다시 벌어오려면 얼마나 걸릴까.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피해상인, 학부모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지만 유학생은 그 혜택의 테두리 밖에 놓여있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서도 처지는 갈린다. 부모에게서의 지원을 받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과 떠밀리듯 쫓겨나야 하는 사람. 누구나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는 없으니 (그리고 학부생이 장학금을 받는 건 더 어렵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가족의 자본이 그들의 앞날을 결정하는 거다.
요즘 제일 맘 편한 아이들은 우리 강아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맘 편히 자는 걸 보면 괜스레 웃음이 난다. 나도 코로나로 어딜 가지 못하고 매일 함께 있어주고, 산책길엔 평소보다 사람이 더 없고, 아주 좋을 때 같다.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갑갑해질 때도 있지만 집 안에 틀혀박혀 지낼 때 종종 내 방이 요새같이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지금은 조용한 나날들이다. 친구들도 만나기 어렵고, 있던 친구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금은 조금은 외로운 시간일 것이다. 난 오피스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따로 재택근무로 바꾸어 일할 것도 없고, 늘 그렇듯 집에서 공부한다. 하지만 원할 때 학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 떨 수 없고, 도서관도 마음대로 드나들기 어렵고 계획된 컨퍼런스는 모두 취소되고 여행도 어려운 이 때는 정말로 집에서 도를 닦는 마음으로 지내야 한다.
온난화 현상이니, 재해니, 질병이니 하는 모든 것들이 요즘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 결국은 우리가 자초한 일인 걸까, 하는 푸념과 부정적인 생각이 들다가도 또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한다. 지금 내게 있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코로나가 잘 알려줬으니까. 그리고 지금 어려움을 겪는 모든 친구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