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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Feb 26. 2021

산책, 그 달콤한 교감의 시간

독일에서 강아지와 함께 살기

그동안 학업에 매몰되어 지내느라 브런치를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래 봤자 코비드 시대에 방 안에서 하루 종일을 보냈으면서도 말이다. 같은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친구들도 이공계를 전공하는 친구들은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연구실에 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100% 홈오피스가 가능하다. 더더욱 집에 붙어서 지내는 중이다. 가끔 있는 미팅이나 워크숍 등은 모두 줌으로 가능한 요즘이고 그 시간을 제외하면 지난 학기 내내 방 안에 틀어박혀 책과 씨름한 느낌이다. 하지만 혼자라고 느껴지거나 따분하지 않았던 이유는 강아지들이 나와 함께여서 였던 것 같다.


작년 8월 말 한국에서 돌아올 때 강아지들과 함께 독일로 왔다. 데리고 오기 전엔 노령견이고 가끔씩 아픈 적도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만반의 준비를 거쳐 떨리는 맘으로 데리고 와보니 여긴 강아지들이 살기 너무 좋은 곳이었다. 처음 한 달은 강아지도 나도 적응을 하느라 고생 꽤나 했지만 (화장실 문제, 산책 에티켓.. 전부 리셋이었다) 요즘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마 봄이 오는 따뜻한 날씨도 한몫하는 듯하다. 



강아지들이 열한 살이 되었지만 같이 산 시간만큼 주인이 강아지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E.T와 소년처럼 서로를 좋아하지만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다른 '종'이랄까.. 독일에 와서 강아지들이 처음 보였던 문제 행동(이라고 여겼던)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강아지 훈련 동영상을 보고 적용해 보았다. 이곳엔 훈데슐레(강아지 훈련 학교)가 있지만 우리 강아지들은 노견이라 참석을 제한하는 곳이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산책을 자주 시키고 틈틈이 인터넷으로 강아지에 대해 공부한 바를 적용해 보는 것이었다. 나의 강아지들은 한국에서는 없던 분리불안이 생겼고, 한국에서 가져온 낯선 사람, 아기, 개를 보고 짖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런 모든 어려움이 한순간에 드라마틱하게 사라지진 않았다. 다만 산책과 훈련을 통해 맞춰가는 중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우리 강아지들의 문제를 잘 알아채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산책을 부담으로 느끼곤 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나가야 한다는 게 특히 아이들 어릴 때는 너무 귀찮았다. 그렇지만 독일에 도착한 날부터는 산책이 짐, 이라고 투정 부릴 틈도 없이 매일 네다섯 번은 강아지들을 밖에 데리고 나가야 하는 의무감이 생겼다. 독일에서는 강아지들이 집에서 화장실을 갈 만한 장소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화장실 바닥에 배수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을 사용할 수도 없고,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야외 배변을 한다. 그래서 우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눈이 많이 와서 일 주일 내내 하얀 세상이었던 2월 초


난 밖에 나갈 일이 없으면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집순이라 산책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강아지와 함께 독일에서 지내기 전에는 내가 사는 집을 삭막하게만 여기며 지냈다. 겉으로 보면 동네가 너무 조용하고 딱히 예쁜 곳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아지들과 이곳저곳을 쏘다니면서 새로운 산책 루트를 찾아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생각보다 아늑하고 좋은 곳이었단 것이었다. 우리 집 바로 뒤에는 강아지들이 산책하는 넓은 들판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 숲길이 있다. 집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걷다 보면 큰 공원이 있고 그 반대방향에는 또 다른 풀밭이 펼쳐진다. 아마 혼자 지냈다면 끝까지 몰랐을 공간들이었다. 매일 한결같이 걷다 보니 나를 아는 척해주는 동네 주민들이 생겼고, 가끔 마주치는 견주들도 생겼다. 다들 우리 강아지들을 예뻐해 주니 산책하는 시간이 즐겁고 기대도 된다. 혼자서 였다면 매일 집에 틀어박혀 지내느라 얼굴이 허옇게 변했을 텐데 (비타민 D도 부족하고) 강아지 덕분에 하루의 패턴이 잡혀갔다. 


강아지들과 산책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잘 산책하는 법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 아닌 것 같다. 독일에서도 가끔 '날뛰는' 강아지를 만나지만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이고 우리 강아지들이 제일 날뛰는 축에 속한다. 이곳에 와서 처음 한 달 정도는 다른 견주들의 눈총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강아지 산책 매너를 알지 못하고 강아지들과 밖을 돌아다녔다. 다른 강아지들과는 만나도 무작정 다가가면 안 되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나가기. 만약 견주가 허락한다면 강아지들과 인사시키기. 강아지가 원한다고 해서 어느 곳에서나 냄새 맡게 하지 않고 주인이 리드하는 산책을 하기. 간식이라는 보상을 늘 가지고 다니면서 훈련에 잘 참여하면 늘 보상을 해주기. 등등은 산책을 통해 만나는 다른 견주들에게 내가 배운 것이었다. 산책은 특히 어린 개들에게는 즐거운 훈련의 시간이 된다. 주인과 교감하고, 자연을 뛰어다니며 스트레스를 풀고, 주인의 명령과 리더십에 따르는 규칙을 배우는 시간이다. 열 한살이나 된 강아지들이지만, 난 이곳에 와서야 우리 강아지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고 느낀다. 


여섯시간짜리 긴 기차여행도, 친구 집 가는 짧은 S반 이용도 아주 잘 하는 노아
친구 집도 편한 노엘


독일에서는 강아지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상점도, 대중교통도 함께 이용할 수 있고 호텔도 강아지를 허용하는 곳이 많다. 친구 집을 방문할 때면 강아지들과 함께 갈 때도 많다. 우리 강아지들은 희한하게 집 근처가 아니면 아주 아주 착한 강아지들이 된다. 심지어 다른 개가 옆에 지나가도 짖지도 않고 뻔히 쳐다보거가 무시한다. 어쨌든, 다행히 강아지들이 협조해 주어서 난 이곳에서는 여기저기를 강아지들과 많이 쏘다녔다. 개들은 다양한 상황과 사람을 만나면서 사회에 적응해나가고, 주인을 더 신뢰하게 된다. 일석 이조의 환경이다. 


우리 강아지들은 이 동네에선 아주 작은 개(XS)에 속한다. 개껌을 사러 나가도 우리 개 크기에 맞는 개껌은 팔지 않는다. 그 대신 큰 개들은 많이 마주치는데 그런 개들은 하루에 두 시간은 기본으로 산책을 시켜준다고 한다. 내 룸메이트도 어릴 적 부모님이 검정 래브라도를 키웠는데 엄마가 출근 전 한 시간, 퇴근 후 한 시간을 기본으로 산책시키셨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개들은 기본 체력과 에너지가 엄청나 산책을 하지 않으면 당장에 여러 말썽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 강아지들은 하루 한 시간 정도를 산책한다. 메인 산책은 두 번이고, 나머지는 화장실을 다녀오기 위해 잠깐 밖에 나가는 시간이다. 한 번에 나갔다 올 때마다 3-40분 정도를 걷는데 산책 후에는 집에서 조용히 잠을 잔다. 독일에 온 지 다섯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 강아지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잘 걷게 되었다. 다리를 수술한 노아는 이제는 정말 잘 걷고, 디스크와 아픈 다리를 가지고 있는 노엘이도 이제는 곧잘 걸어 다닌다. 강형욱 씨가 산책은 의무라고 늘 강조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산책하지 않은 개가 집에서 말썽을 부린다고 말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주인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산책은 하면 할수록 너무 즐거운 시간인데 그걸 왜 놓칠까?! 


난 독일에 와서야 산책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지 않았을까. 이곳에는 물론 집 근처에도 자연이 있고, 사람도 별로 없는 곳이라 산책하기에는 완벽한 곳이지만 한국도 내가 조금만 부지런했다면 할 수 있었을 테다. 그리고 산책을 통해 내 강아지를 더 배우는 것 같다.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달콤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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