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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Oct 15. 2021

먹고 기도하고 (공부하라)

독일에서 박사 공부하기

작년 8월 말 독일에 도착해서 이 집에 산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었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는 햇수로 2년째이지만 처음 1년은 거의 독일에서 지내질 않아서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과연 백수가 아니라 박사과정생이 맞는지 헷갈린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지난겨울은 코로나까지 겹쳐서 많은 유학생들이 그랬듯이 조금은 혹독한 시간이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 것 같기도 하지만). 


독일에 와서는 브런치를 열심히 쓰리라, 결심했었지만 본업이 바빠지니 브런치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래도 이왕 글을 올릴 거면 시간을 들인 글을 쓰고 싶고, 그런 생각에 하루하루 미루고 잊어버리고.. 그러다 글로는 담지 못한 너무 많은 일들이 지난 세 달 동안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결혼이란 걸 하게 되었다. 그동안 고민하던 일을 저질러버렸고, 이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지켜볼 예정이다. 외국에서 결혼생활을 한다는 건 여러 이점이 있지만, 그중 큰 장점은 돈을 덜 쓴다는 거다. 이곳 독일에서는 새로 결혼한다고 혼수를 장만하는 일도 없고, 집을 비싸게 구해야 할 이유도 없다. 주변에서 내 결혼생활을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도 없다. 결혼 준비도 해외에서 하다 보니 독립적이고 내 맘대로의 준비가 가능해졌다. 


두 번째. 여름 내내 시간을 쪼개서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친구들 사는 곳에 가기도 하고, 친구들이 우리 동네에 놀러 오기도 했다. 이제 유럽 내 이동은 훨씬 자유로워졌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10월부터 엄청난 스케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정말 말 그대로 시간을 "쪼개서" 놀러 다녔다. 그래도 여름의 휴식이 없었다면 번아웃이 심하게 왔을 거다. 지난겨울부터 혼자 놀기, 공부하기, 베이킹 등등 모든 걸 집에서 해왔으니까. 그래도 집순이답게 아직도 집에 있는 시간이 좋다. 

강아지들이랑 독일 여행


원래는 여름에 콜로키움과 컨퍼런스가 하나씩 잡혀있고 그다음 스케줄은 10월 말에 있는 컨퍼런스 뿐이었다. 그런데 왜 일이 하나씩 느는 걸까. 스케줄을 일 년 전에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지도교수님이 갑자기 연락을 주셔서 다음 학기에 가르칠 생각이 없냐 물으시는 바람에 급하게 강의 지원을 하게 되었다. 전혀 생각이 없었던 터라 뭘 가르칠까.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가 등등의 모든 의심들이 내 머리를 훑고 지나갔지만 언젠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해야겠다 싶었다. 다행히 내 지원서가 승낙이 되었다. 컨퍼런스도 그렇지만 이번 강의에 지원할 때에도 마음가짐은 합격했으면 좋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합격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 올해 내 논문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물 건너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또 급작스럽게 안내된 작년 코로나로 무산되었던 파리에서의 워크숍의 재개 소식. 10월은 아주 아주 바쁜 달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나의 학문 정체성은 사회과학인지, 인문학인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 독일에서의 인문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으로서 이제 막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작년 이맘때 코로나로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집에만 갇혀있어야 했을 때 '과연 집에서 공부만 하고 논문만 쓰는 게 옳은 걸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그때가 아주 그리운 시간이 되었다. 한국 박사생들처럼 코스웍도 들어야 할 것 같고, TA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공부하고 스스로 연구하는 시간, 글을 쓰는 시간이 많이 주어진 다는 건 아주 감사한 일이다. 그 시간을 통해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스스로의 연구 스케줄을 꾸려가는 법도 배우게 되고 책도 많이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활동은 시간이 지나면 원하던 원치 않던 따라오게 되는 것 같다. 기회는 조금만 기다리면 자꾸 찾아온다. 그 기회가 오기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게 할 일이라는 걸 또 배운다. 


제발, 무사히 10월이 지나가고 행복한 11월이 오길 기다린다. 아마 그때가 되면 내 브런치도 조금은 더 부지런해지지 않을까?


한 학기 동안 가르칠 교실. 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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