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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Jun 22. 2023

살아있음의 반짝임, 아름다움.

지난 주말 친한 친구 S의 할머니 장례식에 다녀왔다. 6년 전 드레스덴의 친구 집에서 지낼 때 부활절 가족모임에 초대해 주셔서 방문한 적이 있었고 그때 이후로 할머니의 소식을 친구에게서 전해 듣곤 했었다. 파킨슨병으로 고생하시다 얼마 전 요양원으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로 다음 소식이 할머니의 부고 소식이었다. 얼마 뒤 친구에게서 장례식 초대카드를 받았다 (독일에서는 보통 장례식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장례식과 장례 이후 식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식사는 가까운 지인, 가족들만 참여한다). 장례식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부터 한 달 뒤였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리 차를 렌트하고, 독일의 장례식 문화에 대해 미리 물어보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장례식에 모인 할머니의 가족들은 아직 많이 슬퍼했다. 아니, 어쩌면 장례식 때까지 그 슬픔을 조금 유보해 두었던 것 같기도 하다. 채플에서 할머니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고 묘지로 가서 할머니의 유골이 담긴 유골함을 땅에 묻은 후,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 위에 꽃과 흙을 뿌렸다 (흙을 뿌리는 이유는 우리 모두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다 함께 할머니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그리스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장례식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장례식에서 할머니를 위해 많이 울었던 유족들은 장례식에 방문한 사람들의 식사시간을 통해 많이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아직 일 년의 반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는 유난히 슬픈 소식이 많았다. 1월 말 즈음, 설날에는 나의 예쁜 강아지 노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교시절 친하게 지냈던 동생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두 사건 모두 내게는 큰 충격과 아픔이었다. 하나는 내게 큰 슬픔을 주었고, 다른 하나는 슬픔과 동시에 분노를 안겼다.


오래 아팠던 노엘이는 언젠간 내 곁을 떠날 거라 생각했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날이 닥치자 난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할 수 없었다. 일주일 정도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나는 노엘이가 떠난 후 모든 게 실감이 났지만 엄마 뱃속에서부터 함께 있었던 노아는 노엘이가 자신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는 사실을 며칠이 지나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주가 지나고 나자 노아도 무기력해졌고 불리불안이 생겨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했다. 노엘이가 떠나고 난 후 나를 붙들어준 건 내 남편과 노아, 그리고 먼저 강아지를 보내본 적 있는 친구들의 위로였다. 함께 울고 이야기하는 게 많이 위로가 되었다.


노엘이와 노아. 13년을 함께한 쌍둥이 강아지.

 

내 머릿속에 있는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 그 무엇으로 인해 나는 1년에 한 번씩 한국에서 추적검사를 한다. 이번 4월에도 병원에 다녀왔는데 대학병원 신경외과 대기실에 앉아있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중 가장 신경이 쓰이는 사람들은 나처럼 젊은 환자들과 내 앞 순서에 다녀간 환자들이다. 아직 20대였을 때 처음 병을 알았는데, 그때 두 번째인가 의사 선생님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내 옆에 앉아있던 내 또래 남자 환자가 아직도 기억에 난다. 우리 둘 다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아마 서로를 안타까워하고 있었겠지. 다른 병원, 다른 과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담당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뇌종양 환자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분이라 그런지 보통 아픈 것 가지고는 당시에는 예약이 어려웠다. 나도 당시에 교모세포종으로 진단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분에게 급하게 예약날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선생님 환자들은 한번 더 쳐다보게 되고 조금 더 오래 사시길, 건강하시길 속으로 빌고는 한다.


지난번 내 앞 순서에 있던 부부는 내가 상담을 마치고 나왔을 때까지 간호사 선생님과 수술날짜 예약을 잡고 있었다. 아내분이 아프신 것 같았는데 본인의 수술날을 정하는 그 시간까지도 가족들의 스케줄과 직장 걱정을 하고 계셨다. 한편으론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눈물을 흘리시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되는 일상을 걱정하는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난다.


이렇게 한 번씩 병원에 오면 아픈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나게 되고 또 그들의 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느낄 수 있다. 나 자신도 병원에 오면 삶의 욕구가 더 커지는 것 같기도 하고. 병원에서 다행히 좋은 소식을 듣고 병원 밖으로 나오면 그때는 그렇게 기분이 좋다. 더 살 수 있다는 확신을 받은 것만 같은 안도감과 감사함. 비록 그때 느낀 감정과 감사함을 항상 느끼진 않지만 그래도 이런 경험을 함으로써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 일인지 생각하곤 한다. 건강하고 생기 있게 사는 사람은 정말 반짝인다. 그것이 영원한 것도, 당연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말 예뻐 보인다.


청소년 자살 관련 연구소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일 년 남짓 근무했는데 매일매일 학교에서 보내온 학생 자살사안 보고서를 읽고 정리해야 했다. 가끔씩은 자살한 학생의 유가족을 방문해 심리부검을 시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을 매우 높다. 그냥 자살률도 원래 OECD 1위였는데 어부지리로 2위로 내려왔다가 (자살률 높은 리투아니아가 OECD 가입하는 바람에) 2020년 기준으로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자살 사안의 내용을 정리하다 보면 아이들의 자살 이유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아이들은 말이 없지만 그들의 연령도, 성격도, 이유도 다양했다. 그걸 양적으로 데이터화해서 보려고 하니 놓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지만 사안 보고서 하나하나를 읽고, 심리부검에 참여하고 나면 아이들의 삶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히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살 예방을 위한 연구소에 다니지만 자살이라는 건 어쩌면 인간이라서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닐까? 괴롭고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 또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선택지가 자살이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면 어린아이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가 자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의 책임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나면 부모와 가족, 친구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자살사안을 읽고 분석하는 우리 연구원들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사안을 글로, 말로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에 빠지는 것 같고, 우리도 심리상담이 필요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나누곤 했으니까. 특히나 유가족의 엄마는 다른 가족들보다 더 많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다. 그것은 엄마 스스로 느끼거나 주변에서 부여하는 시선이기도 하다. 심리부검을 할 당시 늘 빠지지 않던 문항이 '학생의 어린 시절 경험', 즉 모유수유 여부, 양육자 정보 등이었으니까 말이다. 은연중에 사회는 엄마를 아이의 "좋은" 주 양육자가 될 것을 강요하고, 또 죄책감을 부여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죽음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하고 난 후 내린 결론은 '사는 게 좋은 것이다.' 개똥 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살아 있기 때문에 어려움도 겪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도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나도 늘 기쁘고 감사하진 않다. 두렵고 불안할 때도, 지칠 때도 많은데 그래도 살아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 만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작년 2022년 친구들과의 마요르카 여행


내가 2022년까지 살 수 있을까 걱정했던 때가 있었는데, 작년을 지나 2023년 현재를 살고 있다. 작년에는 남편, 친구 세명과 함께 다섯이서 마요르카 여행을 다녀왔는데 우리 모두에게 아름답고 즐거운 기억이 되었다. 그때의 아름다웠던 바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이 앞으로도 내 기억에 살아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이 지옥 같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이 선물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내가 모두 알 수 없고 공감하는 것도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삶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힘든 날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폭력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어떤 위로도 공감도 받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정말 뜻밖의 사건이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삶의 희망이 될 수도 있으니..


그래도 좋은 날이 다시 올 수 있다는 건 내가 힘들 때 늘 되새기는 말이다. 좋은 날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꿈에 그리던 좋은 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곡선을 타고 다니며 감정의 밑바닥을 보게 될 때면 그래도 이때만 참자고 생각해 본다. 비록 발버둥 치고 있다 해도 멀리서 본다면 살아있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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