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
한동안 영화에 꽂혀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나라의 다른 장르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다.
전문가에 비하진 못하겠지만, 그땐 정말 영화가 나의 허기진 부분을 채워주는 듯해서 허겁지겁 들이켰다.
그 시절 나의 영화 취향이 분명해진 것 같은데, 클라이맥스가 두드러지지 않고 지겨움을 꾸역꾸역 참으며 보는 영화가 좋아진 것 같다. 물론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렇게 지겨운 영화가 아니고 마음속의 화(anger!) 말고는 꾸역꾸역 참으며 볼 것도 없다. 영화는 오히려 슬프고, 재미있고, 행복하다.
영화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영화 전반에 내어 놓는다. 빈곤, 양극화, 미혼모, 복지정책, 성매매, 아동을 케어할 수 있는 공공 시스템의 부재 등.. 여러 문제는 한데 뒤엉켜 영화의 장면들을 만들어 낸다.
우선 설명해야 할 것은, 미국은 언제부터일까. 모텔에서 거주하는 인구가 무지하게 많아졌다는 거다. 그도 아니면 다리 밑, 차, 노숙 등등. 2007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부터였을까? 당시 미국에서는 은행들이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무리하게 큰돈을 빌려주어 집을 사도록 '격려' 하였는데 갑자기 경제가 악화되고 초대형 대부업체들이 파산하면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많은 미국인들이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내 생각엔 그때부터 많은 아이들도 부모를 따라 모텔촌으로 들어오게 된 것 같다. 어찌 됐든 그리하여 영화의 주요 배경인 '매직 캐슬' 모텔엔 장기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누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무엇이 정말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무니의 행동이? 헤일리의 행동? 사회복지사의 행동이? 무니를 헤일리에게서 떼어내기로 한 사회정책이?)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무니의 엄마인 헤일리가 무니를 기를 경제적 형편이 되지 않아 성매매를 한다. 무니는 모텔촌에서 친구들과 매일매일의 일과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리 없다. 그러니 사회가 무니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줄 의무가 있고, 무니를 유해한 환경에서도 보호해야 한다. 사회의 결정은 무니를 '유해한' 엄마의 환경에서 떨어뜨려 놓는 거다.
그러나 무니와 헤일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무니는 엄마와의 시간을 행복해하는 것 같아 보인다. 사회는 왜 헤일리에게 아이를 기르며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가질 기회를 주지 않은 걸까. 미혼모로서 아이를 기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가지는 행운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정치인들은 알지 못한다.
이렇게 영화에서는 사회 전반의 뿌리 깊고 만연한 문제를 언뜻언뜻 비춘다. 아직 8살도 되어 보이지 않은 무니가 상스러운 말을 배우고, 사회가 자신을 불공평하게 대한다는 레퍼토리의 언어를 익숙하게 내뱉는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머리가 아프다. 감독이 결국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며칠간의 고민 끝에, 난 어느 기사에서 읽은 감독의 영화 설명으로 돌아갔다. 집. 어쨌든 영화는 집을 주제로 삼았고 집에 대한 문제로 회귀한다. 여러 문제를 영화 전반에 비추지만 그것은 무니와 헤일리가 진짜 '집'을 가지지 못하고 사는데서 시작되었고 진짜 집도 아니지만 '집'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데서 문제가 터지고 끝난다.
무니는 어떤 집도 자신의 것이 되지 못했지만 결국 마지막엔 디즈니월드의 성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그렇게 아이의 환상에서 그곳을 집으로 삼고 찾아가는 씁쓸하고도 슬픈, 그리고 아름다운 엔딩으로 끝난다.
영화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도 굳이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영화를 끝마친 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누가 무니와 헤일리에게서 '집'을 빼앗아 간 것일까. 결국 '집'을 가지지 못했다는 건 사회가 삶의 기반도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