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방문기
2012년부터 13년까지 1년간의 시간을 웨일스에서 보내고 난 후 영국은 내게 '그저 그런' 곳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만든 추억들은 너무 소중했지만 변치 않는 비바람과 가끔씩 훅 들어오는 인종차별적인 반응은 내게 영국이란 나라가 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했다. 어느샌가 영국은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별 매력도 없고 밋밋하게만 느껴졌다.
J는 내게 꽤 가까운 친구이고, 영국인이기 때문에 내게 늘 영국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물론 난 그럴 맘이 없었다. 세상에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영국을 또 가야 할까, 반문하면서 우리가 만날 때면 영국 대신 베를린,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에서 종종 만나곤 했다. 이번에도 내가 독일 유학 소식을 전했을 때 J는 반색하며 "맨체스터로 놀러 와~!" 했지만 난 코웃음을 쳤다. '내가 거길 가나 봐라'
하지만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일. 어찌어찌해서 난 눈을 떠보니 맨체스터 행 비행기표를 구했다. 뒤셀도르프에서 맨체스터까지 가는 비행기 티켓값이 60유로밖에 되지 않아..라는 변명과 함께.
독일 유학생활 한 달 차. 되지도 않는 독일어에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려는 참인데 맨체스터에 내리니 반가운 말들이 귀에 들어왔다. 오 아는 말이다! 출입국 심사를 맡으신 관리자와 정답게 담소를 나눈 후 공항을 나왔다. 말이 통하는 나라에 산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유학생활을 했던 뱅고(Bangor)와 맨체스터가 가까워서 맨체스터 도시엔 이미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이곳이 칙칙하게만 느껴졌었다. 죄다 산업도시처럼 생겼고 건물도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맨체스터 주민인 친구를 따라 거리 곳곳을 걸어 다니니 생각보다 건물이 예뻤다. '아. 영국 건물들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영국에만 있을 땐 알지 못했던 것들이 독일에서 생활하다 오니 새삼 눈에 보였다. 못생긴 건물들이 아니었다. 내 맘이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을 감사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거다.
이번 여행에서 생각지도 못한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난 한국에서 지내고, 그 친구들은 영국에서 지내느라 만나지도, 연락도 자주 못했는데 이번에 영국에 가니 나를 보러 여럿이 와주었다. 시간이 지났는데 어쩜 우린 며칠 만에 본 것 같았다.
이렇게 며칠을 친구들과 함께 먹고, 떠들고 쇼핑하고 돌아다녔다. 그냥 그걸로 충분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하는 말을 이렇게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웠고, 친구 집에서 한국 음식을 충분히 해 먹을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영어로 모든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맨체스터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는 내 친구는 맨체스터는 살기 좋은 동네라고 했다. 큰 도시이지만 집값도 크게 비싸지 않고(우리나라로 치면 부산 정도?)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고, 편의시설도 가깝다. 이번 여행에서 친구들과 방탈출 게임 카페에 다녀왔는데 영국 시내에 이런 놀이시설이 있는 정도라면 훌륭하다. 이번 맨체스터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진 항상 맨체스터를 무시했는데(?!) 역시 살아봐야 제대로 말할 수 있다.
영국에 있을 때 난 분명 이곳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국에 돌아올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땐 힘들었지만 0부터 시작한 나만의 영역을 치열하게 쌓아놓았던 것 같다. 분명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야 돌아보니 영국에도 내가 남겨놓은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땐 너무 치열하게 사느라 모든 것들을 부정적으로 보았나 보다. 난 영국에서 흔한 감자튀김을 너무 좋아하고, 식당에 가면 tap water(수돗물)을 공짜로 주어서 따로 음료를 시키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아했다. 조금만 미안해도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해 주는 상냥한 사람들도 좋아했다. 그리고 그중 제일 좋은 건 친구들이다. 영국은 내게 많은 친구들을 주었다.
영국에서 살고 있는 나의 친구들은 이제 대부분 직장을 가지거나, 박사학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와 만났을 때 가난한 박사생이던 친구는 어느덧 맨시티 클럽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학부 생이였던 친구들도 모두 직장 3-4년 차가 되어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난 언제쯤 정착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보게 되었다. 독일은 내게 손을 내밀어 줄까?
영국에서의 치열했던 그 일 년처럼, 지금 다가오는 일 년도 내게 기회의 시간이 되어줄까. 아마도 내가 느끼지 못한 순간까지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간다면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다시 한번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