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독일에 온 지 4개월이 되었고, 무사히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동안 브런치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짧은 시간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우선 독일어를 계속 써야만 하는 상황과 독일어 학습에서 오는 좌절감 +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재정상태의 불안감 + ‘박사생이지만 5학기 석 사생 같다’ 스스로 주입하는 민망함 등이 여러 달 나를 괴롭히느라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계속 무언가 쌓아 올리려고 노력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삽질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신기하게도 여러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해결되어갔고(완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곧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번 학기 동안 내게 가장 큰 멘붕을 준 사건은 어학원 등록 사건이었다. 대책 없던 나는 독일에 오기 전 어학원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고 2월 말에 독일에 도착하니 어학원 수업을 시작하려면 4월 말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독일어 공부를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두 달을 날리게 생겼다. 그렇지만 인생은 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체화했기 때문에 별 낙담 없이 기다리기로 했고, 기다리는 동안 B1 시험공부도 하고 4월 초에 B1 독일어 시험을 보기로 했다. 독학으로 공부한 B1였기 때문에 독일어 시험에 대한 큰 기대감은 없었고 시험도 어려워 결과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고 내가 기대하고 있던 건 어학원 등록이었다. 어학원만 시작하면 무조건 독일어 열심히 공부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레벨테스트 당일이 되니 B1 레벨은 새로 등록자를 받지 않는다고 했고 B2는 7명만 받는다는 황당한 상황이 나를 기다렸다. 시험을 보러 온 사람은 족히 봐도 40명은 되어 보였는데.. 결국 어학원 등록에 실패했고 기대하고 기다리던 것이 실패로 끝나니 이번 학기가 실패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마음을 조금 정리하고 온라인 강의를 듣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독일어 시험 결과도 나왔는데 놀랍게도 턱걸이지만 합격이었다. 오. B1 레벨을 들을 필요가 없었던 거였다.
5월 엎어진 내 멘탈을 정돈하러 다시 영국 친구 집에 다녀왔다. 5월 말에는 도움이 되는 학교 워크숍도 참여할 수 있었다. 만약 어학원에 등록했으면 하루 5-6시간씩 학원에 다니고 나머지 시간은 숙제를 하며 지내야 했기 때문에 이 모든 기회를 놓쳤을 텐데, 결과적으론 내게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지도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학과에서 남는 돈이 있는데 그걸로 내게 장학금을 줄 수 있게 되었다는 좋은 소식도 들리게 되었다.
그래도 한동안은 앞이 깜깜한 상태에서 지낸 것 같은데, 그동안 내게 지지대가 되어준 건 내 주변에 늘 있어준 친구들이다.
새로 알게 된 친구들도 있었고, 5-6년 된 친구들도 있는데 모두 감사한 사람들인 건 분명하다. 학교에서 새로 알게 된 친구들은 내게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주면서 내 관계망을 넓히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나에게 동네 구경 + 근처 도시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오래된 나의 친구들은 내가 힘들 때마다 선뜻 내게 숙소를 제공해 주어 내가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지내면서 정신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특히 유럽 내에서는 어디로 이동하든 비행기가 꽤나 저렴한 편이고 가까워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날 수 있어서 친구들이 다른 나라에 살아도 내가 자주 방문할 수 있다.
유학 생활, 해외생활을 하면서 내겐 친구들이 가장 큰 자산이고 힘이 된다. 굳이 한국인이 아니어도 우린 서로를 알아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새롭게 사귄 친구들도 아직은 오래된 친구들처럼 나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후에는 내가 독일에서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