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kim Sep 05. 2019

나의 시간이 잠깐 멈춘 순간.

출국을 일주일 앞두고 너무 바쁘다 싶었다.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처리할 일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핸드폰이 고장 났고, 다른 실수들도 하나둘 터지는 바람에 시간은 더 빠듯하게만 느껴졌다. 


그동안 어지럼증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약을 타 먹은 지 1년 정도가 되었는데, 그날도 출국하기 전 약을 받으려고 예약을 잡아놓았다. 그런데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화요일에 예약을 잡았는데 어쩔 수 없이 목요일 다시 약을 타러 병원에 가서 대기하기로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선생님을 만났는데, 선생님께서 그동안 한 번도 머리 사진을 찍어보지 않았으니 출국 전 한번 찍어볼래요? 물어보셔서 그러겠다고 하고 CT를 급히 찍었다. 조금 기다리니 선생님이 별 문제없는 것 같다, 하시고는 혹 문제 있으면 연락 주겠다고 하시곤 나를 보내주었다. 


그날 나는 독일로 돌아가기 전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었다. 병원일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강원도로 가는 차 안이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는 차를 돌려야 했다.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 말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독일로 그냥 떠나갈까 봐 걱정이 되셨는지 나를 바로 입원시키셨고, 난 다음날 새벽에 MRI와 몸 전체 CT를 찍었다.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오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다음날 오후(금요일) 뇌종양을 진단받았다. 

독일은 당분간 갈 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해서 내가 수고한 모든 두 달간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느낌,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애매함과 당혹감, 그리고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비현실감이 뒤범벅이 되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가진 병이 얼마나 심각하고, 아플 건지도 몰랐기 때문에 별로 심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수술할 수 없고, 조직검사도 할 수 없는 부위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철이 없게도 '그럼 머리를 밀지 않아도 되겠구나. 휴..'라는 마음이 첫 번째로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앞으로의 시간은 잠깐 멈춰질 거라는 사실이 점점 와 닿았다. 그 시간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달라질 거라는 건 확실했다. 

독일에 가기 위해 준비한 모든 일정과 약속들을 하나둘 취소해야 했고, 나의 짐을 맡겨두었던 독일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전하고 조금 더 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유럽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친구들, 9월에 결혼하는 S에게 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고 정말 미안하다고, 이번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하니 함께 마음 아파하며 나의 회복을 빌어주었다.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게 슬펐다. 


뒤 돌아보면 이 시간을 통해 내가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시간을 버텨내려 한다. 내가 아파본 만큼,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더 많이 알아볼 수 있고 안아줄 수 있으니 하나님이 내게 이런 시간을 허락하신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잠깐 pause 버튼을 누르고 내 삶이 멈춘 느낌도 들었고, 또 다른 비디오가 상영되는 느낌도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