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을 일주일 앞두고 너무 바쁘다 싶었다.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처리할 일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핸드폰이 고장 났고, 다른 실수들도 하나둘 터지는 바람에 시간은 더 빠듯하게만 느껴졌다.
그동안 어지럼증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약을 타 먹은 지 1년 정도가 되었는데, 그날도 출국하기 전 약을 받으려고 예약을 잡아놓았다. 그런데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화요일에 예약을 잡았는데 어쩔 수 없이 목요일 다시 약을 타러 병원에 가서 대기하기로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선생님을 만났는데, 선생님께서 그동안 한 번도 머리 사진을 찍어보지 않았으니 출국 전 한번 찍어볼래요? 물어보셔서 그러겠다고 하고 CT를 급히 찍었다. 조금 기다리니 선생님이 별 문제없는 것 같다, 하시고는 혹 문제 있으면 연락 주겠다고 하시곤 나를 보내주었다.
그날 나는 독일로 돌아가기 전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었다. 병원일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강원도로 가는 차 안이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는 차를 돌려야 했다.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 말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독일로 그냥 떠나갈까 봐 걱정이 되셨는지 나를 바로 입원시키셨고, 난 다음날 새벽에 MRI와 몸 전체 CT를 찍었다.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오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다음날 오후(금요일) 뇌종양을 진단받았다.
독일은 당분간 갈 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해서 내가 수고한 모든 두 달간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느낌,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애매함과 당혹감, 그리고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비현실감이 뒤범벅이 되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가진 병이 얼마나 심각하고, 아플 건지도 몰랐기 때문에 별로 심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수술할 수 없고, 조직검사도 할 수 없는 부위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철이 없게도 '그럼 머리를 밀지 않아도 되겠구나. 휴..'라는 마음이 첫 번째로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앞으로의 시간은 잠깐 멈춰질 거라는 사실이 점점 와 닿았다. 그 시간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달라질 거라는 건 확실했다.
독일에 가기 위해 준비한 모든 일정과 약속들을 하나둘 취소해야 했고, 나의 짐을 맡겨두었던 독일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전하고 조금 더 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유럽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친구들, 9월에 결혼하는 S에게 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고 정말 미안하다고, 이번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하니 함께 마음 아파하며 나의 회복을 빌어주었다.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게 슬펐다.
뒤 돌아보면 이 시간을 통해 내가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시간을 버텨내려 한다. 내가 아파본 만큼,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더 많이 알아볼 수 있고 안아줄 수 있으니 하나님이 내게 이런 시간을 허락하신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잠깐 pause 버튼을 누르고 내 삶이 멈춘 느낌도 들었고, 또 다른 비디오가 상영되는 느낌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