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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Mar 16. 2017

론다행 버스에서 배운 것

여행의 가치

세비아에서 론다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였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아. 버스 안에서 풍기던 이상한 냄새. 친구들과 난 거의 마지막으로 버스를 탔기 때문에 제일 뒷자리에 앉아야 했다. 하지만 맨 뒷자리 바로 앞좌석에서 우리가 발견한 건 누군가의 응가. 세상에.

더 이상 앉을자리가 없었고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릴 수도 없었고(지금 생각해 보면 왜 내리지 않았을까?) 그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코를 막고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친구 한 명을 급하게 남아있던 앞좌석 한 자리에 앉히고 나와 다른 친구는 그 엄청난 것을 대각선으로 마주하고 자리에 앉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이 응가 냄새를 맡으며 세 시간을 가야 한다니. 맙소사. 조금 더 기다리니 몇 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더 버스에 탔다. 이 사람들은 심지어 '그것' 바로 뒤에 앉아야 했다. 그런데 모두가 이 상황을 마주하고 웃고 있었다. 장난스런 웃음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였고 그나마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우릴 향해 안타까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나와 같이 앉은 영국인 친구는 이 상황의 괴로움을 온갖 표정으로 나타냈다. 


그런데 다른 스페인 사람들은 웃었다. '우와. 아무나 경험하지 못할 추억을 쌓았어.' 이런 표정으로.


아름다운 론다의 풍경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론다 행 버스에서의 기억


론다에서의 열기


왜 그 자리에서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인생의 경험이기 때문이었을까? 인생에서는 더러운 꼴도 보고 아름다운 풍경도 보기 마련이라는 걸 이미 깨달아서일까. 참, 한 편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에 기절할 듯 머리가 아파왔지만 버스 밖으로는 아름다운 풍경이 지나가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언제 내릴 수 있을까가 중요했다. 지금은 모든 괴로운 시간이 지나 추억으로 남았지만. 

이상한 건, 이제는 그때 맡은 냄새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차창 밖 풍경은 조각조각 눈에 남아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모든 순간에 감사할 수만 있다면. 모든 시간을 사랑할 수 있다면.

론다의 투우장

론다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는 아닌 것 같다. 며칠을 지내도 다 못 봐, 이런 곳은 아니란 의미다. 

그렇지만 절벽 끝으로 걸어가다 보면(절벽이었는지 산인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협곡을 잇는 다리와 그곳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집들. 얼마나 앉아있어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그냥 그 풍경 하나 만으로 론다까지 온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론다에서 1박을 하며 오전부터 해 질 녘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론다의 그 유명한 다리


론다에서는 즐거운 경험도 많았다. 저렴한 가격에 예약한 에어비엔비는 생각보다 너무 편안하고 좋았다. 저녁식사를 한 레스토랑에서는 정말 맛있는 술도 공짜로 제공했다(론다에 간다면 El Tajo를 꼭 마셔보시라!) 친구 중 한 명은 너무 맛있다며 그 도수 높은 술을 몇 잔 꼴 딱 꼴 딱 넘기더니 그날 밤 속을 게워내야 했다. 달콤한 맛에 비해 도수가 높으니 조심하자. 한두 잔 정도는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버스에서의 기억. 낭만은 절대 아니었다. 괴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함께 웃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스스로가 불쌍하기도 어이없기도 해 웃을 수밖에 없었던 그 얼굴들. 그래 모두 지나가면 즐거운 경험으로 남는다. 즐거운 기억이 아니라도 우스운 기억쯤은 될 수 있다. 왜 그걸 잊고 사는 걸까. 빨리 지나가기만 바라는 시간조차도 소중하다는 것을.

여행을 떠나려는 친구에게 제일 말해주고 싶은 것은 이 것이다. 

마음을 열고 어떤 경험을 하더라도 웃고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자.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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