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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Feb 15. 2020

 배제와 공감

인터넷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19와 관련된 기사를 읽을 때 종종 중국에 대한 혐오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조금 수그러진 것 같은데 몇 주 전만 해도 인터넷에서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과 함께 근거 없는 소문도 계속 떠돌아다녔다. 멀리 독일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는데 한국에 있었다면 그 감정이 더 생생하게 전해졌을 것만 같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시작되었다는 건 나와 별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중국인들에게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은 들었지만 짧은 내 생각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겠지'라는 생각에 그쳤다. 얼마나 어리숙한 생각인지. 


본격적으로 바이러스가 퍼지자 유럽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독일 남부에 처음으로 발병자가 생기자 독일에서도 바이러스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신뢰를 받는 시사잡지 Der Spiegel에서는 바이러스에 대해 'made in China'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표지 메인을 장식했다. 한인 사회는 동양인 혐오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world/infecting-the-world-economy-how-the-coronavirus-made-globalization-a-deadly-threat-a-974703a5-59ca-436b-ae5a-bdfdb7898343


독일 커뮤니티 내에서 프랑크푸르트나 남부 지방으로 가면 동양인을 기피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었다. 중국계 영국인 친구는 메트로를 타고 다닐 때면 사람들이 자신 옆에 있는 것을 피하는 것처럼 느낀다고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약국에서 일하는데 손님들이 자신 근처에 오는 것을 거부한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차별의 그림자는 내가 모르는 사이 내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혐오나 배제가 나와 상관없이 느껴질 때면 이를 묵인하는 게 쉽지만 혐오를 당하는 사람 입장에 공감하는 순간 더 이상 그 일은 아무 일이 아니게 된다. 유럽에서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모두 아시아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은 내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또 관심도 없다. 내가 만약 중국인에 대한 혐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내가 유럽에 오는 순간 난 똑같은 방법으로 차별당할 가능성이 있고, 그 마음을 느끼는 순간 어떻게 같은 차별을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혐오와 배제는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서 '나는 희생자가 아니지'라고 안심하는 순간 다른 쪽 얼굴이 나를 향할 수 있는 거다. 


이번 KLM 항공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적 행동이 바로 그 하나의 적나라한 예시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우겼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명확하게도 인종차별적인 행태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들에게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똑같은 아시아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기피대상이었고, 차별해도 '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https://www.yonhapnewstv.co.kr/news/MYH20200214017900038


또 하나 너무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멀리서 인터넷 뉴스로만 접할 수밖에 없었는데 숙명여대에 성전환 환자가 합격했지만 다른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또 의문도 들었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칭했다면 더더욱 여성학에 대해 공부했을 테고, 그렇다면 여성의 정의는 생물학적 정의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에 더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야 할 텐데. 소수자의 인권에 힘써 공감하고 함께 싸워줘야 하는 게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반대했을까?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않아도 한 사람의 꿈을 그렇게 반대하고 포기하도록 만드는 냉정함과 '공감력 없음'에 대해 슬픈 마음이 들었다. 


독일에 있는 친구와 이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는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 중에도 여럿이 성전환 중인 것 같다고 내게 말했다. 몇몇은 이미 완료한 것 같지만, 몇 명은 지금 진행하는 단계인 것 같고, 그럼에도 학업을 잘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은 언제나 가능할까. 많은 사람들은 'it's your own buisness(그건 니 일이지)'라고 생각하는 거리두기도 잘 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포옹해주는 일도 하려 하지 않는다. 


모든 생각의 시점은 '나도 그 상황에 있을 수 있었지만 난 운이 좋았던 것뿐'에서 시작하면 혐오와 배제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난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그리고 내가, 또 당신이 앞으로도 그렇게 운이 좋을지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에겐 정말 공감이, 그리고 포용과 환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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