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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Dec 16. 2019

우리는 아직 겨우 하나만 마주했을 뿐이다

여성의 문제, 그리고 여성을 넘어서.

지난 한 달은 이번 학기 중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컨퍼런스와 중요한 면접을 준비하느라 쫓기듯 꾸역꾸역 준비를 해 왔다. 아픈 이후 여러 핑계를 대느라 손을 놓고 있던 공부를 조금 시작하려고 하니 몸이 먼저 반응을 했는지 아프고, 아파 보이고 난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대로, 아니 기대보다 더 컨퍼런스는 의미 있었다.


초보 박사생에게 컨퍼런스가 중요한 의미는 커다란 연구의 세계에서 나의 (혹은 내가 연구하는 주제의) 좌표를 찍어내는 게 조금 더 명확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연구가 연구 세계에서 어디쯤 위치하는지 알 수 있다는 건 중요하고, 또 자신감도 생긴다. (내가 삽질하고 있었던 게 아니구나.)


컨퍼런스에는 대만에서 여러 학자분들이 오셨는데, 들어간 세션 발표 두 군데 정도에서 우연찮게 비슷한 토론 주제가 나왔다.

"한국 남자들은 김지영을 왜 그리도 싫어하는 걸까?"

82년생 김지영이 대만, 중국, 일본 등에서 번역되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만에서 오신 교수님들은 82년생 김지영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여러분 계셨다. 이 소설은 대만에서도 인기이고, 여성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차이점은, 남성들의 미움을 받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82년생 김지영을 옹호하는 여자 연예인은 무차별적 악플에 시달리거나 비난당하기 일쑤였고 영화의 경우에도 개봉을 하기도 전에 평점 테러를 당해야 했다. 사회에는 남녀 대립관계가 만연하게 읽혔고, 그 모습은 외국인의 눈에도 아주 명백하게 보였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의 성 격차(gap), 즉 불평등이 숫자로 보았을 때 확실히 다른 나라보다 심하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순위는 149개 나라 중 115등이다. 그리고 연도별로 보았을 때도 그 격차는 결코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출처: 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 통계

https://gsis.kwdi.re.kr/kr/stat2/NewStatList.html?stat_type_cd=STAT002#


하지만 아무리 이런 지표를 들이대 보아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 지인의 지인이 겪은 경험담을 들이대며 요즘 여성들의 지위 신장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남성들이 설 자리가 없다며 젠더 불평등을 아예 부인해 버리기도 한다. 애초에 성평등 이야기를 조금만 꺼내려해도 '너네 군대는 다녀와서 이야기하는 거야?'라는 미성숙한 발언으로 대화가 차단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성은 언제나 2등 시민이다) 2-30대 청년들의 취업난, 흙수저, 세대 갈등, 병역 등의 문제가 모두 얽혀 그것을 탓할 하나의 창구가 여성, 혹은 여성의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에게로 향하는지도 모른다.


대만 이야기로 돌아와서, 대만에서 오신 그분들의 말을 조금 인용하자면 대만의 성평등은 이미 정책화되어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굳이 사회 구성원 차원에서 싸우고 쟁취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오히려 그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가 되었다. 그들은 한 발짝 시야를 넓혀서 이제는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바라보고 있다.


독일에서 짧게나마 지내며 여성학을 공부했던 시간을 더듬어 보면, 성평등이 정책화되어있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이 더 이상 성평등을 위해 싸움을 멈추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도 성평등 한 독일은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남녀가 완전히 평등한 주체로 서는 날을 꿈 꾸며 입고, 먹고, 일한다. 하지만 여성학에서는 이제 더 이상 남녀의 평등 문제만을 놓고 고민하지 않는다. 교차성, 즉 인종, 계급, 성 (gender identity)를 함께 교차하면서 보기도 하며 역사(postcolonialism)와 환경을 고민하기도 한다.


나 또한 여성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햇병아리 같은 연구자이지만 여성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이는 여성 하나의 문제만을 볼 수 없는 학문임을 깨닫는다. 여성학은 학제 간 연구(interdisciplinary)를 요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대부분의 학문이 그렇겠지만).


앞으로 아프지 않고 오래 공부할 수 있기를 정말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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