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로 구경을 간 집에서는 집주인과 전화 인터뷰를 긍정적으로 했지만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하자 살 수 있는 확률이 많이 낮아졌다.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연락이 이 주째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집주인과 연락을 하고는 바로 '안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고는 다른 집을 찾기 시작했는데 WG-Gesucht에서 집이 한 군데 올라와 바로 연락을 했다. 그전까지는 '집주인이 영어로 전화했을 때 싫어하면 어쩌지?' 이렇게 걱정했는데 이제는 마음이 급해지니까 그런 걱정 따위는 내려놓고 무작정 전화부터 했다. 다행히 다음날 집을 보러 다녀왔다. 사진도 올라오지 않은 집이었는데,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그래도 강아지를 데리고 살기에는 발코니도 없고, 정원도 없고 해서 조금 답답한 느낌이었지만 위치는 중앙역 근처여서 괜찮다 싶었고 집주인도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와 사는 것은 상관없다고 했다. 그리고 Untermieter(세든 집에 다시 세를 들어오는 사람)를 구하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집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다음 집도 immoscout에서 찾아서 구경했는데, 사실은 부동산에서 가지고 있는 집이지만 세입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구를 다음 세입자에게 넘기고 싶기 때문에(übernehmen) 세입자가 직접 방을 내놓은 케이스였다. 집은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부동산 소유였기 때문에 서류가 까다로운 점, 강아지를 데리고 살 수 있느냐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 위치가 언덕배기에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세 번째 집을 구경하고 온 날 한숨을 쉬면서 immoscout을 뒤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두둥, 하며 내 눈에 들어온 집이 마지막 네 번째 집이었다. 별로 눈에 띄는 집은 아니었지만 그냥 연락을 해 보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답장이 왔고 구경을 갔다. 사진보다 집은 훨씬 괜찮았다. 무엇보다 내 룸메와 분리해서 사용할 수 있는 집 구조와 정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룸메이트와 화장실만 같이 쓰면 되고 주방은 작지만 각자 하나씩 있었다. 독일은 보눙을 구할 때 문제가 주방인데, 사람들이 이사 다니면서 자신의 부엌을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유학생들은 그걸 새로 설치하기도 귀찮고, 비싸고 해서 이미 부엌이 설치되어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좋은 옵션이다. 보통 부엌이 설치되어 있는 집은 다른 집보다도 비싼 편인데 이 집은 부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보잘것없기 때문에 부엌 때문에 추가 금액을 받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그리고 세탁기도 맨 아래층에 주인이 한 대를 설치해 주어서 아파트 사람들이 무료로 함께 사용한다고 했다. 여러 면에서 편리하고 돈이 굳었다.
살고 있는 세입자가 집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 집에 사람들이 많이 구경을 다녀갔냐고 물어보았는데 지금까지 6-7 사람 정도가 보고 갔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만약 연락을 하면 바로 계약을 하려고 할 거라고 했다. 아싸.
지금까지 본 집들은 거의 내가 처음으로 연락해서 처음으로 구경을 간 사람이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는 걸 마지막 네 번째 집을 보고서야 할게 되었다. 나는 독일 공무원도 아니었고, 뭐 내세울 것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다녀가고 나서도 이 집이 쉽게 나가지 않겠구나,라고 깨달을 때 즈음 내가 나타나야지 나에게 집을 줄 거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난 우리나라처럼 먼저 온 사람이 가져가는 줄 알았지. 하지만 독일 주택시장은 생각보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
어쨌든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고, 강아지를 기르는데 괜찮냐, 물어보니 몇 마리냐, 크기는 얼마큼 되느냐 물어봐서 두 마리인데 두 마리 합쳐서 5kg도 되지 않는다 이야기하니 그럼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강아지 두 마리까지는 집에서 기르는 것이 허용된다는 것이 계약서에 추가된다고 했다.
사실 그렇게 구두로 이야기를 하고 나서도 나와 내 룸메의 재정 관련 서류를 보내고 계약서 내용에 서로 합의를 하고, 도장을 찍고 하는 데까지 또 3주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이제 난 집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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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난 내가 영어로 이야기하면 집주인이 나를 세입자로 맞는 것을 싫어할까 봐 엄청 걱정했는데 내가 만난 4명의 주인들은 모두 영어를 잘 하진 않았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그 점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았다.
처음에 편지를 보낼 때에만 독일어로 정중하게 쓴 후, 전화통화를 해야 할 때 다시 '저는 독일어보다 영어가 편한데 영어로 대화하는 게 괜찮으신가요?' 이렇게 물어보고 그쪽에서도 괜찮다고 하면 문제없을 것 같다.
뭐든 부딪히면 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