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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Mar 01. 2020

생리에 대하여

열네 살부터 매달 하는 게 생리인데, 정작 생리에 대한 고심을 하기 시작한 건 '피의 연대기(2017)'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영화는 아주 과거 일로부터 역사를 더듬기 시작하여 생리를 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시각과 사회가 생리를 어떻게 여성을 가두고 더 열등한 존재로 보는 데 사용되었는지 설명한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4104


영화에서 여성은 피로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흘리는 존재로써, 함께 연대하고 고민할 수 있다. 모든 여성이 생리를 하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생리를 경험하는 만큼, 여성에게 생리는 중요한 이슈이다.


한국에서 지낼 때는 생리대에 대한 고민을 그다지 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우리나라 생리대가 최고인 줄 알았다. 그러던 중 2017년 생리대 파문이 일었다. 여성들이 사용하는, 그것도 아주 민감한 부분에 사용하는 그 물건이 아주 믿을 수 없는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니. 그러면 그동안의 우리 자궁 건강은 누가 책임져?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생리대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그때가 2017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독일에서 구할 수 있는 생리대가 너무 저렴했다. 우리나라의 1/3 가격 정도였다. 아주 좋은 퀄리티와 브랜드의 생리대의 경우에도 1/2 가격이 채 되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는 생리대는 대부분 친환경 테스트, 유기농 테스트를 마쳤다. 그러다 작년에 뇌종양 진단을 받게 되어 의도치 않게 한국에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고, 독일에서 가져온 생리용품이 떨어져 이제는 한국 제품을 사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비싸?'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친 걱정은 여성들의 건강권이었다. 불평등이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듯이 여성의 자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겠구나. 요즘에는 저렴한 브랜드 상품도 나온 것 같지만 (사실 독일에 비하면 그리 싼 것도 아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좋은 퀄리티의 생리대는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저 여력 되는 대로 쓰라는 의미인 건가? 적어도 돈을 주고 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가격으로 모든 생리대 가격을 조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독일에서의 생리대(탐폰)는 내가 느끼기에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저렴했는데 올해부터는 더 저렴해지게 되었다. 작년에 한참 독일 내에서 탐폰에 부과하는 세금(사치품!!)에 대한 반대 여론이 뜨거웠다. 책도 나왔다. 독일은 책에 세금이 붙지 않으니 책에 탐폰을 붙여서 '책' 명목으로 탐폰을 판다, 뭐 이런 운동도 있었다.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9/jun/21/no-luxury-book-containing-tampons-is-runaway-hit 


올해부터는 드디어 독일 내 파는 탐폰에 세금이 없어지게 되었다. 탐폰이 무슨 사치품인가. 독일에서 생리하는 여성이라면 85%는 사용할 텐데. 그런데 우리나라는?

https://edition.cnn.com/2019/11/08/europe/tampon-tax-germany-luxury-item-grm-intl/index.html

한국에서 한 팩에(16개) 짜리 탐폰을 12,000원을 주면서(독일에서는 3-4천 원이면 산다)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 적 있다. "아마도 정부는 생리하는 여성들이 중성화하기를 바라는 거 아닐까" 사실 여러 정책적으로 보자면 그 반대겠지만, 생리용품에 관해서는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많은 여성들이 매달 하는 생리는 '사치'행위이다. 어쩌면 그들의 눈에는 아직까지도 비밀스럽고, 어쩌면 심지어 혐오스러운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도 사람들은 생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날' 이라던지 은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생리통을 하는 것도 숨기려 할 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생리용품을 구입할 때도 아직까지 내 주변 사람들 중 여럿은 조금은 '부끄럽게' 생리용품을 사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불투명한 비닐봉지를 챙겨달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괜찮은데 상대방이 한사코 챙겨준다고 할 때도 있다. 심지어 생리용품을 살 때도 생리대, 탐폰, 생리 컵 등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건 무슨 비밀 이야기인 것처럼 여자 아이들에게 어떤 생리 용품을 사용할지 선택권을 주지도 않는다. 소녀는 그냥 '생리대'를 써야 한다. 탐폰이나 생리 컵을 사용해본 아이들은 그동안 써왔던 생리대가 새로운 세계에 비해 얼마나 불편하고 찝찝했던 것인지 새롭게 깨닫기도 하면서 자신의 몸을 조금 더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탐폰이나 생리 컵을 사용하는 걸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성적으로 문란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사실은 전혀 상관없다.)라고 고민하며 비밀스레 신세계를 누린다. 생리용품은 성(sexuality), 즉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고 통제하려는 여성의 몸 와 섹슈얼리티와도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의 생리용품은 우리나라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환경을 생각한 것 같다. 독일 생리용품을 사용하다 한국의 제품을 사용하면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왜 그렇게 불필요한 포장재가 많은지. 독일의 보통 탐폰은 어플리케이터가 없는 형태라 아주 작게 나오지만 난 거기까진 불편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어플리케이터가 함께 나오는 제품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어플리케이터도 종이로 되어있다. 나트라케어 제품을 사용해본 사람들은 아마 어떤 건지 알 거다. 한국 브랜드의 탐폰을 사용해 보았는데 플라스틱 어플리케이터가 나오는 걸 보고 아주 깜짝 놀랐다. 하나씩 사용할 때마다 느껴지는 죄책감에 다시 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보통 생리대(소형이나 라이너) 제품은 하나씩 포장되어 있기보다는 박스 안에 그냥 함께 들어있다 (아래 사진에 첨부해 두었다). 요즘은 무엇보다 생리 컵을 사용하고 있어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 제일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인 것 같다.


팬티라이너는 낱개 포장이 아니라 박스에 함께 들어있다. 탐폰. 생리대. 생리컵.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은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씩 흘러 보내는 피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사회에서 변화를 모색해 보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여성들이 가난해도 건강에 무해한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생리가 사회에서 여성을 억죄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여성 스스로가 소비자로서, 그리고 생리 용품을 만드는 회사가 더 친환경적인 용품을 고민하고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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