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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Apr 05. 2020

먹을 수 없음을 선택하다

나의 먹고사는 문제

주변 사람들이 흔히 먹는 음식을 내가 먹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 시작되는 걱정은 '사회생활을 잘할  있을까?' 것이다. 요즘은 채식주의자들이 늘긴 했지만 그들조차 아직도 공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가 지금 당연히 먹고 있는 음식을 '당연히' 먹지 못하는 (혹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다. 밀가루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고, 설탕은 쥐약인 사람들도 있다. 당연한 음식이 없고, 당연한 재료가 없다. 편협한 생각만 있을 뿐이다.


친한 친구가 살을 빼고 싶다고 고민하길래 '그럼 설탕을 먹지 않는 건 어때?' 하고 제안해 보았더니 '사회생활하면 먹는 것에 있어서 내 선택권이 별로 없어'라고 했다. 어쩜. 그놈의 공동체. 먹을 것 하나도 자유롭지 못하니 하물며 삶의 중요한 선택을 하는 것에 있어서 내 몫은 얼마나 될까.


케톤식은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여러 식단 중 가장 어려웠다. 그마저도 철저한 케톤식이 되지 못했지만 밀가루, 설탕, 유제품을 끊은 상태에서 탄수화물과 과일까지 줄이니 외식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뇌종양을 진단받기 전에는 4년 동안 채식주의자였다. 사회학과에서 공부했지만 학과 회식에서조차 삼겹살집에 나를 데리고 가기 일쑤여서 나는 밥과 김치만 먹다 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채식주의가 아닌 대안적 식이요법을 선택한 지금은 무설탕, 글루텐프리. 유제품 프리 음식만 먹는데 식당 고르기가 더 어려워졌다.


파스타집/ 오대산 근처 곤드레밥집


그나마 한국에서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점 중 하나가 있다. 체인점이라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편하다. 암환자들은 유기농 음식을 자주 찾게 되는데, 이 음식점은 유기농 재료를 취급한다고도 하고 여러 알레르기 유발 재료를 빼주어서 감사하다.


시골로 내려가도 직접 담근 장과 깨끗한 재료를 사용해서 음식을 만드는 음식점을 찾을 수 있는데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여행 내내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음식점만 찾다 보면 선택의 폭도 좁아지게 된다. 하지만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찾을 때면 너무도 감사하고 뿌듯하다. 대부분의 음식점은 내게 맞춰줄 의향이 없고 재료를 빼 주지도 않으니 애초에 그런 음식을 찾아야 한다. 왜 한국 음식에는 설탕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 있을까? 직접 담근 장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장(간장, 된장, 고추장..)에는 밀가루가 있으니 글루텐프리 음식도 아니니 참 어렵다.


식이정보가 명시된 메뉴/ 애호박면 파스타/ 글루텐프리, 무설탕, 유제품프리 케이크


먹는 걸로 소외되면 참 서럽다.

독일에서는 그런 점에서 조금 더 만족스럽다. 유럽 많은 나라의 식당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식이제한에 대해 설명하면 꼭 지켜주려고 노력하고 글루텐프리 식단도 여럿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물론 모든 식당이 그런 건 아니다. 그래도 찾으면 보일 정도는 된다. 친절한 곳에서는 메뉴에 이렇게 글루텐프리, 채식주의 정도가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독일에서든 한국에서든 내가 설탕과 밀가루를 먹지 않는다고 하면 타인이 내게 짓는 무언의 동정의 표정이 있다. 하지만 난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즐거움보다 건강을 얻고 더 오래 사는 걸 선택했는 뿐이다. 물론, 식이제한과 내 머릿속 종양과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 해도 말이다. 작년 10월부터 시작한 밀가루와 설탕 제한식으로 지금까지 6kg이 빠졌고(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2kg이 쪘다. 엄청 많이 먹어서 그런지..), 피부는 깨끗해졌다. 장은 극도로 민감해진 건지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가끔씩 배탈이 난다. 지금까지 네 번 그렇게 배탈이 났다. 몸의 변화가 느껴지고 예민하게 그 반응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있다. 어떤 음식이 내게 좋고, 어떤 음식이 나쁜지. 단순히 설탕과 밀가루만 끊은 게 아니라 식이 자체를 건강하게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삶의 패턴도 변화되었다.



현지 재료에 맞는 잡채와 김밥 만들기
친구들이 먹는 호떡과 내가 먹을 감자 팬케익(독일식) - 둘 다 독일인 친구가 만들었다.


친구 초대하기는 독일에서 더 쉽기 때문에 가능하면 집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재료도 내가 고르고 만드는 시간도 함께 보내기 때문에 친구들과 퀄리티 높은 시간도 많이 보낼 수 있다. 내가 초대받을 때에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 친구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잘 배분해서 우린 잘 먹을 수 있다. 한국 친구들은 내게 가끔 '네가 먹을 수 있는 게 있긴 하니?'라고 묻는데 생각보다 많다! 생각해보지 않아서 그런 거뿐일 거다.


내가 어떤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나의 개인적 이유 때문이고 그걸 이해해 주고 함께 고민해 주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또 아직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생각보다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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