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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Mar 02. 2020

살아있는 나를 누린다

작년 여름 전혀 예상에도 없던 뇌종양을 진단받느라고 놓친 것들이 몇 개 있다. 계획해 둔 것들이 있었는데 막상 죽을지도 모른다니까 그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그때 놓친 것들이 종종 아쉬울 때가 있다. 


바보 같게도, 종양이 작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독일로 돌아와서 내가 아픈걸 조금 잊고 지내다 보니 예전에 하던 걱정거리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지'부터 시작해서 내일 해도 되는 그런 걱정들. 그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는데 현실에 발을 디디니 다시금 눈 앞의 것들이 나를 덮쳐왔다. 그리고 가끔씩 몸이 보내는 징후들을 느끼면서 내가 하고 있는 걱정들이 하찮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만하면 많이 살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죽음이 내 몸 가까이 붙어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정말 그것이 내게 찾아오기 전까진 공감하기 어려운 것 같다. 두려움이 커서 더더욱 나의 시야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감사하고 살아있는 일을 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창가에 앉아 맞는 따뜻한 햇빛이 새삼 즐겁고 기다려진다. 


별로 상관없는 사진이지만.  제주에서 만났던 이 삽살이를 보면 행복해진다. 

얼마 전 조조 래빗을 영화관에서 보고 왔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가는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데,  그곳 사람들은 두 부류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정말 중요한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 비록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그 사람을 통해 이 세상은 춤을 추고 꽃을 피운다. 나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믿고 싶다. 나도 모르게 외면하고 다른 사람을 탓할 때도 있지만, 다시 미안하다고 말하고 포용과 환대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는 청소년 자살 관련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자살한 청소년에 대한 연구를 주로 했고 유가족들도 많이 만났기 때문에 그때도 죽음, 자살이 내게 멀리 있지 않았다.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으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기까지의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 안다. 그렇지만 또 그게 얼마나 한 순간에 벌어지는 일인지도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하기에는 타인으로서 내가 얼마나 자격이 될까? 모든 사람들은 각자만의 이야기가 있다. 모두는 존중받아야 한다. 나에게도 한동안 우울감이 너무 많이 찾아왔을 때는 정말 하루 종일 죽음이 생각났고, 그건 정말 나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였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누군가가 필요하다. 내 옆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조금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잘 견디면 또 다른 희망이 찾아올 거라는 걸 정말 믿어야 한다. 그래야 또 하루를 견딜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지금을 견디면 지금보다 행복한 순간이 올 거야. 


나에겐 정말로 희망이 찾아왔고,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살아있음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나는 정말로 오래 살고 싶다. 그래서 나도 행복하게 살고 싶고, 이 세상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 그래서 살아있음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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