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kim May 10. 2020

건강하지 못한 젊음을 산다는 것은

코로나로 세상이 떠들썩한 만큼 내 세상도 고요한 태풍의 눈을 지나고 있었다.

지난 4월 MRI 검사에서 종양은 줄어들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 힘들고 현기증도 더 많이 심해졌다. 그리고 종양이 커졌을까 걱정도 더불어 따라왔다.




젊은데 건강하지 못하다고 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

조금 어색하다.

나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

일자리를 구하려 할 때에도, 식당에 갈 때에도 난 조금 어색하다.

간단하게 말해서 나를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다가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고 말을 더듬을 때나, 식당에 가서 '설탕과 밀가루를 제외시켜달라고 할 때' 종업원이 내게 보내는 시선이 난 부끄럽다.

그리고 미리 그 시선을 예측하고 차단할 때도 있다.


아픈데 괜찮은 척해야 할 때도 많다. 난 어지럽지만 어지럽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사람들은 나를 병자로만 보지 나의 능력을 보아주지는 않을 것 같은 두려움.


아프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를 허용하는 사회의 기준은 무엇일까? 

스스로 용인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나는 조금 애매한 느낌이다. 뇌종양을 진단받긴 했지만 수술도 받지 않았기에 겉으로 보면 어디가 아픈 건지 티가 나지 않는다. 티가 나지 않는 병은 쉽게 관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건 나의 경우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경험하는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살 수 있지'라고 타이른다. 정말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조금 느릴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나를 탓해야 하는 걸까? 나의 게으름? 아니면 나의 병? 


이번에 독일에서 주는 장학금에 합격을 했다. 한국이었으면 했을 걱정은 '내 건강 문제가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일 텐데 이곳 규정에는 내 병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내 병에 관한 정보를 고지하면 얼마 간의 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규정이 있었다. 안도가 되었다. 


작년에 고용량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서 부작용 때문에 몸이 축축 처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지도교수님의 도움으로 장학금 준비를 했던 보람이 있었다. 장염에 걸리고 입술이 다 부르튼 채로 장학금 인터뷰에 참여했다. 그래. 모든 것이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다. 모두가 나를 한 방향으로 보지 않을 테다. 


어제는 친구를 만났다. 내가 아프다는 걸 모르는 친구였는데 용기를 내어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걸 말하고 계속 머리가 아프다는 걸 투덜거렸다. 한참 징징거리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리고 오늘은 편하게 잠을 잤다.

아프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나를 그대로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만큼 나는 괜찮다.


나를 그대로 비출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먹을 수 없음을 선택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