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식물을 가꾸는 선생님입니다.
햇살에 비춰 반짝이는 초록 잎사귀들은 언제 봐도 싱그럽습니다.
그래서 매년 봄이 오면 저는 교실과 복도 창가에 식물을 가져다 둡니다.
3월 말, 교실에 찬 기운이 가시고 운동장에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아이들도 차츰 어색함이 가시고 서로를 알아가는 마음이 빈 틈을 메워가기 시작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21년의 교사 생활 중, 네 번째 맡은 6학년입니다. 열세 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6학년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도 특별한 학년입니다.
2008년, 어린 선생님은 처음 만난 6학년 아이들이 마냥 좋아 마음을 맘껏 내주었습니다. 아이들과 하는 모든 활동이 즐거웠고 아이들과 나누는 모든 순간이 기쁨이었습니다. 어린 선생님과 어린 학생들은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알아갔지만, 선생님도 학생도 아직은 미숙했기에 오해가 쌓이고 오해는 서로에게 흉터를 남겼습니다. 이후 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아이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건넨 한 조각의 마음이 흉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 두려워, 서로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2025년, 저는 아이들과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아이들을 지켜봅니다.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바쁜 열세 살 아이들은 선생님 곁으로 다가올 틈이 없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속삭이며 다음 쉬는 시간을 기약합니다.
3월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 남자아이 하나가 제 옆으로 다가옵니다. 창틀에 놓인 식물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선생님, 이 식물은 이름이 뭐예요?
-선생님, 혹시 제가 이름 지어줘도 돼요?
-선생님, 제가 물 줘도 돼요? 물은 얼마만큼 줘야 해요?
열세 살 남자아이가 보여준 호기심이 기특해 조잘조잘 아이와 쉬는 시간을 채워갑니다. 이것저것 질문하던 아이가 조심스레 자기 이야기를 건넵니다.
-저는 파리지옥을 키워보고 싶어요.
해마다 교실에서 식물을 가꾸지만 먼저 관심을 보여준 건 아이가 처음입니다. 대견한 마음에 이튿날 파리지옥을 들고 교실로 들어섭니다. 쉬는 시간, 아이에게 종이 가방을 건네줍니다. "열어 봐." 종이 가방 속 파리지옥을 꺼내 든 열세 살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저와 파리지옥만 번갈아 쳐다봅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이거 사 주신 거예요?
아이는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저에게 꽃보다 아름다운 웃음을 보내줍니다. 식물을 좋아해 아이의 관심에 답했을 뿐인데, 이런 애정 어린 눈빛을 받아도 되는 걸까요? 당혹감을 에둘러 감추며 저는 교실에서 같이 키우는 식물이라 단호하게 선을 그어봅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아이의 다정함이 무서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겁쟁이 선생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외쳐댑니다.
-이런 선생님은 처음이에요. 저 정말 잘 키워볼게요. 선생님 사랑해요.
예기치 못한 아이의 환한 웃음과 뜬금없는 사랑 고백이 생각보다 너무 따스합니다. 햇살 같은 포근함에 놀란 저는 물러서려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아이를 바라봅니다.
이 정도는 괜찮은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