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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 나는 이 순간이 행복합니다

과학 선생님은 감정 표현하기로 수업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아이들은 일부터 오까지 오늘의 감정을 숫자로 표현합니다. 숫자 '일'은 속상함과 불편함을, 숫자 '오'는 행복함과 즐거움을 나타냅니다.


저는 이 활동을 싫어합니다. 어떤 부연 설명도 없이 읊조리는 '일'부터 '오'까지의 숫자는 자칫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기 십상입니다. 감정 표현을 하고 싶다면 '왜', '어떻게', '무엇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돌아보게 해야 합니다.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에서는 개인의 감정을 어루만지기 어렵습니다. 이 경우 이런 활동은 짜증과 분노의 배출구로 쉽사리 전락해 버리지요.


물론 모든 생각과 감정은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감정을 찾아내는 것도 연습이고 습관입니다. 하지만 26명이 6~7시간씩 하루 온종일을 함께 보내는 교실에서는 그 형태가 조금 달라야 합니다.


즐거운 생각은 즐거움을 부르고, 불행한 생각은 불행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 들기 시작한 아이들은 감정이 널뛰기하듯 이리저리 팡팡 튀어 오릅니다. 내가 보내는 눈빛 하나, 행동 하나가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어려운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땐 언제든지 선생님을 찾으라고 이야기합니다. 남아서 이야기해도 좋고, 쉬는 시간에 이야기해도 좋고, 전화로 이야기해도 좋다고 말해줍니다. 선생님은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언제든 개인적으로 찾아오라고 알려줍니다.


단, 교실 전체를 대상으로 할 땐 명확한 선을 그어줍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말을 입에 담으라고. 불행만큼 행복도 쉽게 전염되기에 우리 반에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라고. 그래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질문에는 항상 긍정적인 대답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불행을 쫓으면 불행만 보이듯, 행복을 쫓으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내 주변의 행복을 찾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찾은 행복의 기운이 다른 이의 축 처진 마음에 활력소가 되길 바라며, 오늘 알림장 한 꼭지는 행복한 일 찾기에 나서봅니다.



2025년 11월 4일 알림장

스물넷. 나는 이 순간이 행복합니다.
**세 문장으로 묘사하기



행복한 순간에 내가 느낀 감정을 글이라는 사진기로 남겨봅니다. 사진사가 되어 내가 겪은 행복한 순간을 자세히 묘사해 봅니다.


한참이 기다려도 아이들의 연필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세 문장이라는 단어가 부담이었을까요? 선생님이 먼저 나서봅니다.


-선생님은 토요일 아침 노트북과 책을 챙겨 카페에 갔어. 해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햇살이 따뜻하고 포근했단다. 찬 바람 때문에 햇살이 더 따스하게 느껴져 행복했지.


선생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아이들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자신의 행복을 써 내려갑니다.


어제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물을 한 모금 마셨습니다. 잠이 잘 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니 평소와 같은 시간이었고 기분이 상쾌해 행복했습니다. -김00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친구들과 불렀습니다. 1절부터 5절까지 함께 음을 맞춰 불렀습니다. 가사가 틀리면 계속 다시 불렀지만 함께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차00


나는 어제 친구들과 농구를 했습니다. 시원한 바람도 불었습니다. 농구 연습을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00


이번 주 알림장 1번은 세 문장으로 행복한 순간 찾기임을 미리 알려줍니다. 깊은 숲 속이라 할지라도 발길 닿는 곳에 길이 생겨나듯, 우리의 삶도 우리가 생각한 대로 길이 만들어집니다. 행복한 순간을 찾아내고 나누는 것도 연습이고 습관입니다. 오늘의 작은 생각이 모여 우리 아이들이 행복의 길을 만들어가길 바라봅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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