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책갈피에 마음을 담다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책은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각자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바라보게 하지요. 저는 우리 아이들도 책의 통해 세상을 볼 수 있길 바라봅니다.


올해 저는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주로 청소년 소설이지요. 새 책은 아니지만 선생님이 먼저 읽고 난 후 아이들에게 그 책을 선물하지요. 교탁 위 매번 책이 쌓여있다 보니 아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좋아하는 건 교탁 위에서 늘 볼 수 있는 '책', '꽃', '맹구'라는 걸요.


최근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엮어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을 피워냅니다. 누군가는 클레이로 직접 만든 맹구를, 누군가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문구를 담은 책갈피를, 누군가는 마음이 담긴 편지 한 통을. 마음이 담긴 작은 물건들이 일상에 온기를 전해줍니다.


그래서 오늘은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해 봅니다. 명함 크기의 다양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미니 카드입니다. 책갈피 대용으로 쓰기에 딱 맞는 크기입니다. 책갈피를 많이 사용하기에 책 읽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집니다.


'선물'이라는 소리에 기대감에 부푼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우리 반 아이들 숫자만큼 26개의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는 미니카드입니다. 가슴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글과 그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은 한 가지 변칙을 넣어봅니다.



-얘들아, 26장의 카드 중 단 한 장은 선생님 카드와 똑같은 카드란다. 누가 이 카드를 가져 가는지 한 번 지켜보겠어. 선생님과 마음이 통하는 영혼의 짝꿍은 누굴까?



순서에 따라 한 명씩 차례대로 칠판으로 나옵니다. 26장의 카드 앞에서 고민에 빠져듭니다.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걸 부담 없이 고르는 아이부터, 선생님과 같은 카드를 가지려 연신 내 표정만 힐끗힐끗 쳐다보는 아이까지.


26장의 카드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누가 선생님과 인연이 닿았을지 궁금해 조바심이 납니다. 애가 탄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숨겨둔 선생님의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전체 앞에서 이야기하는 대신, 한 명씩 귓속말로 아이들에게 정답을 이야기해 줍니다.


선생님과 다른 카드를 가지고 간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에게는 똑같은 말을, 같은 카드를 가지고 간 한 명의 아이에게는 '네가 내 영혼의 짝꿍이야'라고. 그러고 보니 아이들에게 귓속말을 하는 건 처음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의 비밀 대화에 기대와 설렘으로 귀를 쫑긋 세워 보입니다.


똑같은 말을 한다고는 했는데,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궁금해 몸이 달은 아이들을 앞에 두고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제가 올 한 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을 들려줘야겠지요?



00아, 선생님 너 진짜 사랑해!




한 명씩 아이들 귀에 정확히 속삭여 줍니다. 아이들 반응이 각양각색입니다.


누군가는 본인이 아니라 실망합니다.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자기 할 일만 이어갑니다.

누군가는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으며 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누군가는 소리가 안 들리다며 몇 번이고 다시 들려달라고 졸라댑니다.

선생님과 같은 카드를 가진 한 아이는, 본인이 아닌 척 표정 감추기에 갖은 애를 써 봅니다.


즉흥적으로 내뱉은 사랑고백에 반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좀 더 놀려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책갈피를 통해 전하는 선생님의 마음 한 조각이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우리 반 모두에게 귓속말로 사랑을 전해봅니다.


의사소통에서 언어적 표현 보다 실상 비언어적 표현이 더 많은 영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상대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첫 단계는 '말'이 아닐까요? 1학기부터 아이들이 들려준 '선생님, 사랑해요'가 결국 제 마음에 녹아들었습니다. 2학기에는 받은 만큼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얘들아, 사랑해'라고 한 명, 한 명에게 선생님의 마음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당연히 '농담이겠지'라고 시작하겠지요. 하지만 반복되는 따스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상대의 마음을 녹이고 서로의 관계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갑니다. 서로에게 전한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따스한 빛이 되어주길 바라봅니다.


영혼의 단짝이 아니면 어때? 너희들은 내가 제일 사랑하는 아이들이란다. 사랑해.


17화(2).jpg 선생님과 김00이 선택한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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