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독서가 원래 이렇게 신나는 거였어?

2025년 10월 깊어가는 가을 수요일, 교실에서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수요일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알림장 미션으로 좋아하는 단어를 고를 때나, 즐거웠던 일을 묘사할 때면 언제나 '수요일'이 등장합니다. 수요일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5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지요. 게다가 제일 좋아하는 체육관 수업도 있어, 수요일은 언제나 일주일의 짐을 잠시 내려놓는 구간입니다.


수요일은 긴장의 끈이 잠시 풀어집니다. 오전 수업은 빠르게 흘러갑니다. 오늘 2-3교시는 국어 수업입니다. 2시간짜리 연차 시 수업이지만, 교과서의 군더더기를 잘라내고 핵심만 뽑아 빠르게 진행합니다. 6학년 2학기는 배워야 할 양은 많고 시간은 부족합니다. 그 와중에 아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매번 수업은 뒷전이 되기 일쑤입니다. 80분짜리 수업을 50분 만에 정리하고 여유시간 30분을 겨우 찾아냅니다. 요즘 책 읽는 시간이 없어 이렇게나마 쉬어가는 시간을 만들어냅니다.


쉬는 시간, 아직 선생님 마음을 모르는 아이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매번 '다음 시간에 뭐해요?'라고 물어봤자 선생님은 칠판 한 귀퉁이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가리키는 것 외엔 별다른 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아이 하나가 조심스레 교탁으로 다가옵니다.



-선생님, 다음 시간에 뭐해요? 30분이나 남았는데.


-국어 하지.


-그건 아는데, 선생님이 교과서는 필요 없다고 하셨잖아요.


-응, 책이 필요 없는 국어수업 할 거야. 배움 공책만 준비해 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아이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선생님, 설마... 아니지요?"라고 말끝을 흐리며 아이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칩니다. 뭐라고 생각했는지 아이는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를 쉴 새 없이 교실 여기저기에 퍼 나르고 다닙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 소문은 어느새 교실 뒤편에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까지 전달됩니다.


교실이 웅성이는 소리로 금세 가득 채워집니다. 대표자 역할을 맡은 한 아이가 비장한 얼굴로 뚜벅뚜벅 선생님께 다가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봅니다.



-선생님! 오늘 '쪽지시험' 치는 건가요?



비장한 얼굴을 한 아이 곁으로 다른 아이들도 하나, 둘 모여듭니다. 초조한 마음에 귀를 쫑긋 세우고 선생님을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수업 시간에는 볼 수 없던 집중력입니다. 이럴 때만 선생님을 찾아대는 아이들을 보니 묘한 복수심이 솟아오릅니다.



-어머, 정말 시간이 30분이나 남았네. 어제 우리 국어, 수학, 과학, 사회, 영어 다섯 과목을 공부했는데, 정리하고 쪽지 시험을 칠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



선생님의 목소리를 끝으로 절규의 탄성과 결사반대를 외치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집니다. 상대를 설득할 때면 항상 근거를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서인지, 이젠 서로 손발을 맞춰가며 쪽지시험을 피하기 위한 오만가지 이유를 들어댑니다.



-선생님, 어제 민아랑 희재가 아파서 결석했잖아요. 그런데 시험을 치며 민아랑 희재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괜찮아. 아픈 친구들은 봐줄 거야. 그리고 틀리면 혼자 천천히 정리하면 돼.


-선생님, 지금은 수요일 3교시예요. 게다가 4교시는 체육, 5교시는 영어잖아요. 전부 전담 선생님시간이라 혹시 틀린 문제가 많으면 오답정리를 할 시간이 없어요.


-괜찮아. 내일 쉬는 시간도 있잖아. 오늘 하루 만에 끝내지 않아도 돼.


-선생님, 영어를 빼더라도 총 4과목이에요. 한 과목당 5개씩 20개면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괜찮아. 시간 충분해. 30분이면 30문 제도 풀 수 있어.



복수심에 칼을 갈고 있는 선생님은 '괜찮아'라는 말로 조목조목 반박해 봅니다. 포기를 모르는 우리 아이들은 1학기 때 배운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다수결을 해야 한다며 수업 종이 울리는 순간까지 이유를 들어댑니다.


수업 종이 울립니다.


아이들은 '결국'과 '혹시' 사이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배움 공책 펴세요. 다 준비했지?



결국... 긴 한숨이 교실 여기저기에서 새어 나옵니다.



-어제 결석한 두 학생이 선택한 나라는 멕시코와 스웨덴입니다. 빈칸 채워 넣으세요.



혹시... 이번에는 희망의 탄성을 뱉어냅니다. 어제 사회시간 과제 조사를 위한 선작업 중 빠진 내용을 채워 넣습니다. 연필을 멈춘 아이들은 다시 선생님을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실망감과 기대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잠시 뜸을 들여봅니다. 두 손을 꼭 쥐고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 아이부터 선생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이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교실이 긴장감으로 가득 차오릅니다.


그럼 지금부터...


30분간 독서!



와! 교실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아이들은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합니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오릅니다. 쪽지시험에서 해방된 아이들은 신이 나 배움 공책을 멀리 치워버리고 자신의 책을 꺼내 듭니다. 그때 한 아이가 책을 꺼내다 말고 의문을 던집니다.



얘들아, 근데 독서가 원래 이렇게 신나는 거였어?



아이의 말에 교실에 정적이 스며듭니다. "30분간 독서"라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흥에 취한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이게 맞는 걸까? 아이들은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것도 잠시, 누군가 "당연하지! 책 읽는 게 최고야!"라며 정적을 깨트립니다. 그제야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돌아옵니다. 하나, 둘 책을 꺼내 들고 편안한 얼굴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즐거우면 되는 거지요. 실상 열세 살 아이들에게 강제로 시킬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선생님은 단지 분위기를 조성해 줄 뿐이지요. 그 속에서 본인 스스로 필요와 즐거움을 발견해 내길 바랄 뿐입니다.


올해 저희 반 아이들은 책을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나 독서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강제로 책을 읽힐 수는 없지만 독서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많은 지혜와 즐거움을 가져다주는지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비록 오늘 하루는 쪽지시험에서 해방되어 얻은 즐거움이겠지만, 이런 작은 경험들이 누적되어 언젠가는 독서 그 자체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얘들아, 근데 독서는 신나는 일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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