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선생님도 새출발하세요

2025년 10월 마지막주 겨울 초입의 어느 날, 교실에서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날씨가 매섭게 추워졌습니다. 복도를 오가는 아이들의 옷차림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3월 첫날, 처음 본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패딩을 입고 목도리와 장갑으로 몸을 감싸기 시작합니다. 온몸을 꽁꽁 싸맨 것으로도 부족해 누군가는 양손을 겨드랑이에 넣고 추위를 떨쳐내려는 듯 종종걸음으로 바삐 움직입니다.


-선생님, 저 펭귄이 왜 뒤뚱거리는지 알 것 같아요. 너무 추워 몸을 웅크리니깐 저도 모르게 펭귄이 된 것 같아요.


추위에 떨며 몸을 옹송그려 총총걸음으로 교실로 들어서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정말 펭귄가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이젠 정말 겨울이 온 것 같습니다.


올해 저는 유독 아팠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따스해진 날씨 덕에 봄, 여름 동안 병원을 멀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오니 다시 증상이 나타납니다. 아프기 시작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집니다. 과연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맞는지 자꾸 회의감만 늘어갑니다.


10월 말은 6학년 담임선생님들에게 가장 바쁜 시간입니다. 중입 배정 원서를 써야 하지요. 가정과 학교가 주고받아야 할 서류가 쌓여있습니다. 이 와중에 저는 미룰 수 없는 병원 진료로 점심시간 후 교실을 비워야 합니다. 병원에서 변화된 피검사 수치를 확인할 때마다 내게 주어진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낍니다. 투닥거리던 일상 속 작은 웃음들이 얼마나 저를 행복하게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병원 가기 전, 점심시간까지 교실을 지킵니다.


교탁 옆으로 몇몇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앉아있습니다. 아이들은 다음 주에 있을 학예회 종목 발표에 고민이 많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학예회 발표회에서 뭐 하실 거예요?


-선생님은 어른이잖아. 꿈끼발표회는 꿈을 찾아가는 너희들을 위한 자리야.


-에이, 선생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꿈을 찾는 데는 나이가 필요 없어요.



아이는 얼굴을 선생님 코 앞까지 들이밀며 기대감에 눈을 반짝입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래? 선생님도 그러면 선생님 그만하고 내 꿈을 찾아 다시 떠나볼까?


-맞아요! 새출발하세요. 일단 올해까진 선생님 하시고, 내년엔 중학교 선생님으로, 3년 후엔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그 후엔 대학교에서 꿈을 찾으세요. 선생님도 새출발하시는 거예요.



겨울 초입, 또다시 병원을 찾으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시간의 기억을 글로 조각하면서도 때론 덧없이 느껴지는 허무함이 제 뒤통수에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아프기 시작하니 마음이 더 흔들립니다.


그런데 새출발이라니. 아이 입에서 나온 '새출발'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다시금 설레게 합니다. 올해 저는 다른 시각으로 우리 아이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의 일상을 글로 남기며 저는 제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비록 더딘 한 걸음이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한 발자국이 올 한 해를 충만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매일 써 내려가는 글 속에서 나와 아이들을 되돌아보며 내가 가진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껴보았습니다.


'새출발'에는, '도전'에는 아이의 말처럼 나이가 필요 없습니다. 반짝이는 아이의 눈망울과 자신감 있게 도전을 권하는 아이의 말이 병원으로 향하는 무거워진 저의 마음을 살살 달래줍니다. 훌쩍 커버린 우리 아이들이 이젠 선생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줍니다.



자리를 비울 시간입니다. 넉살만 잔뜩 늘어 버린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른 퇴근에 속마음을 감추고 아쉬운 척해 보입니다.



-선생님, 저도 병원 따라갈래요.


-제가 선생님 보호자로 따라가 드릴게요.


-너무 보고 싶을 거예요.


-내년에 새출발하시려면 아프지 마세요.



입을 막지 않으면 끝없이 이어질 말의 홍수를 아이 하나가 말 한마디로 끊어냅니다.



-그만 좀 해. 어차피 우리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날 거야!



맞습니다. 내일 금방 다시 만나겠지요. 웃으면서 다시 만나려면 저부터 힘을 내야겠지요. 아프기 시작하니 몸과 마음이 같이 약해졌습니다. 항상 스스로 다독이며 마음을 추스리기는 하지만, 오늘 아이가 던져준 '새출발'이라는 말이 유독 귓가를 맴돕니다. 어른도, 선생님도 마음 한 구석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럴 때 상대를 향해 도닥이는 말 한마디가 누구보다 큰 힘을 실어준다는 걸 아이는 알고 있었을까요? 아이의 말에 선생님도 힘을 내 내일을 향해 씩씩하게 한 발 내디뎌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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