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5일 알림장
지금 담배 피우는 사람 손 들어
교실에 일순간 정적이 흐릅니다. 자신들이 들은 소리가 맞는 건지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만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적이 이어집니다. 이리저리 눈알만 굴리는 아이들은 혹시 올라가는 손이 있는지 눈치만 살핍니다. 결국 참다못한 아이 하나가 쭈뼛거리며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선생님,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시면...
응? 담배 피우는 걸 간접적으로 물어볼 수도 있는 걸까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꾹 눌러봅니다. 오늘은 금연교육이 있습니다.
이제 6학년쯤 되니 아이들은 금연교육 시간에 배울 내용을 가르치치 않아도 줄줄 읊어댑니다. 담배의 해악을 잔뜩 담은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는 실상 부족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술, 담배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항상 아이들 입에서 따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알고 싶지 않은 가정사가 장황하게 펼쳐지지요. 부모님이 얼마나 담배를 피워대는지, 부모님이 어제 얼마나 술을 드셨는지, 술에 취한 부모님이 어떤 실수를 하셨는지. 그리고 곧장 의문을 품습니다. "왜 어른들은 하는데 우리는 못하나요?"
음주와 흡연이 몸에 나쁘다는 건 1학년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올해 아이들은 6학년이니 좀 더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사실 술과 담배는 성인을 위한 기호식품 중 하나라고. 그렇기에 어른들은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자 선택을 한다는 것을요.
2학기, 저희 반 알림장 3번은 거의 고정입니다.
내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
사실 어른들도 지나친 음주와 흡연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하지만 성인이기에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인들이 한 행동의 결과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고 본인이 선택하는 거라고. 음주와 흡연을 택했다면 추후 내 선택의 결과로 찾아올 불행도 본인이 감안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요.
다만 현재 너희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기에, 너희가 한 선택은 법적보호자가 모두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어 술, 담배는 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성장기에 시작하는 술, 담배는 성인이 되어 배운 술, 담배와는 비교할 수 없이 건강에 해를 끼치기에 부모님께서 지금 너희의 선택을 막는 거라고.
그때 누군가 선생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술 담배를 하시나요?"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의 답을 기다립니다. 선생님도 솔직하게 선생님의 선택을 알려줍니다.
-선생님은 술, 담배를 하지 않아. 천식이 있어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고, 술은 한 모금만 마셔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그대로 기절하듯 쓰러져. 선생님은 건강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성인이지만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어.
술, 담배에 '선택권'을 부여한 게 신기한 듯 아이들은 선생님을 빤히 쳐다봅니다. 본인들에게도 언젠가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것이 어색해서였을까요? 오늘 알림장은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해 봅니다.
2025년 11월 25일 알림장
서른하나. 2032년까지 술, 담배 하지 않기
우리 아이들도 7년 뒤, 2032년이면 어엿한 성인이 되겠지요. 미성년자라는 딱지를 떼고 성인이 되어 말 그대로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스스로 책임질 나이가 되겠지요. 이제 막 어린이 딱지를 떼고 청소년이 되어가는 아이들에게 너무 먼 미래 같겠지만, 본인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것이 신기한가 봅니다.
물론 선생님의 입장에서 내 아이들이 담배를 배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술도 적당히 건강하게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본인들이 선택을 한다면 그 또한 어른인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단지 선택의 순간 전까지 바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안전과 자신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가 한 선택이 결국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저 아이들보다 좀 더 먼저 인생을 살아가는 선배의 입장에서 알려주고 싶습니다.
내 아이들이 2032년에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내가 한 선택에 대한 결과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라는 것을 알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나길, 2025년의 선생님이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