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선생님, 눈에서 꿀 떨어져요

12월 첫째 주, 아이에게 받은 최고의 선물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저는 노래를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열세 살 아이들도 똑같습니다. 2학기, 사춘기 터널로 한창 진입한 우리 아이들은 음악 시간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툭하면 입을 꾹 다물어버립니다. 요즘은 걸걸한 아저씨 목소리라도 따라 불러주는 게 고마울 지경이지요. 그래서 2학기가 진행될수록 음악시간은 주로 악기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1학기가 리코더였다면, 2학기는 국악기 소금입니다. 소금은 반 전체 모두가 처음 접해보는 악기입니다. 단소와 달리 소금은 생소했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연주에 동참합니다. 9월, 바람소리만 나던 아이들도 이제는 제법 단단한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12월이 되니 리코더 연주에서 두각을 드러낸 아이들은 음악책에 있던 다른 악보도 소금으로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음악 수업이 든 날이면, 점심시간마다 소금을 불며 연습에 열을 올립니다. 오늘 점심시간에도 누군가는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누군가는 못다 한 학원 과제를, 누군가는 소금을 불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갑니다. 그때 태린이가 소금을 들고 교탁 앞으로 조용히 걸어 나옵니다. 선생님에게 할 말이 있는 모습입니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 소금으로 불 수 있어요.


뭐지? 내가 좋아하는 노래? 사실 올해 선생님은 태린이에게 여러 가지 노래를 부탁했습니다. 태린이는 제가 가르친 학생 중 가장 리코더를 잘 부는 아이라 여러 가지 악보를 주고 연주를 부탁했지요. 귀찮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이의 도전의식을 자극했던지 태린이는 선생님이 준 악보를 전부 소화하고 때론 교탁 옆자리에서 연주도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노래를 좋아했을까요? 좋아하는 노래가 많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생각에 잠겨 고개를 갸웃거리자 태린이도 답답했는지 말을 이어갑니다.


-4월 달에 제가 불러드린 그 노래요.


아! 뭔지 알겠습니다. 김동률의 '출발'입니다. 4월 말, 어린이날 맞이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체육관에서 체육대회를, 오후에는 교실에서 미니 파티를 진행했지요. 파티에는 공연자가 필요했기에 원하는 사람에 한해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기대한 대로, 희망자가 없어 1학기 임원들을 강제로 공연에 동원했습니다. 그때 노래도 곧잘 부르던 태린이에게 선생님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김동률의 '출발'이라는 곡을 불러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당연히 거절할 거라 생각하고 농담조로 한 부탁을 아이는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본인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든 노래를 연습해 체육대회 당일 전체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아! 김동률의 '출발'! 그 노래 소금으로도 연주할 수 있어?


악보도 없고 열세 살 아이들이 듣는 노래도 아닐 텐데, 그 노래를 연주할 수 있다고? 태린이는 배시시 웃으며 자기 할 수 있다고, 몇몇 음은 소리가 안 맞지만 그래도 해 볼 수 있다며 눈을 반짝입니다.


음감이 좋은 아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선생님은 기대감에 눈이 커집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내가 좋아하는 학생의 연주로 다시 들을 수 있다니.


선생님 교탁 옆자리에 바짝 붙어 앉아 아이는 연주를 시작합니다. 김동률의 '출발'이 아이의 악기에서 울려 퍼집니다. 선생님은 귀를 쫑긋 세우고,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연주에 집중하는 아이의 모습과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선생님 가슴도 벅차오릅니다. 수업 종이 울렸다는 사실도 잊고 선생님은 아이의 연주에 집중합니다.


그때 선생님과 함께 연주를 들으며 선생님과 태린이를 바라보던 아이 하나가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눈에서 꿀 떨어져요



맞습니다. 아이가 정확하게 표현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6학년 생활 속에서 나조차 잊고 있던 저의 기억을 떠올려 연주를 들려준 태린이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감춰둔 꿀이 새어 나왔나 봅니다. 태린이가 연주를 마치고 이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 촬영을 부탁하니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줍니다. 어쩌면 영상 속 태린이의 모습보다 아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요?

이전 11화31화. 끝을 향한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