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드라마를 보며 한바탕 눈물 바람을 한 후,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등장인물과 스텝들을 보여주는 장면들에서 문득 든 생각... 언뜻 보면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엔딩이었지만 우블(우리들의 블루스)엔 뭔가 다른 게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잠깐 등장했던 단역들까지 하나하나 보여주는 드라마는 처음이었다.
작년에, 딸아이가 자기가 다니는 독서실 앞에 차승원이랑 신민아랑 김우빈 등이 와서 드라마 촬영을 했다면서 흥분해서 얘기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 "멋있는 곳 다 놔두고 왜 동네 슈퍼 앞에서 찍을까, 엄마?" "그런 평범한 장면이 필요했나 부지~."라고 난 무심코 대답했다.
얼마 전, 우연히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를 접하면서 그때 딸이 말했던 드라마구나 하면서 역시 무심코 시청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련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였고 내가 애정 하는 이정은 배우가 나오길래 그저 무심히 보다가 혼자 훌쩍댔던 기억. 그때의 눈물은 차승원의 절망에 찬 얼굴 표정이 그때의 내 표정과 비슷하게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갱년기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힘들다는 걸 넘어서서 거의 우울증 환자처럼 지내던 때라서 그랬을까? 이노무 갱년기는 끝나기는 하는 걸까? 하면서.
옴니버스 드라마이기에 주인공이 주기적으로 바뀌면서 산만하게 느껴지고 왠지 모르게 오버하는 듯한 등장인물들의 연기 때문인지 정주행을 하진 않았지만, 드라마는 한번 시청하기 시작하면 아예 안 본다는 건 쉽지 않기 때문에 넷플릭스로 틀어놓고 집안일을 하기도 하면서 지난봄을 보냈다.
그러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한지민과 김우빈 그리고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회차였다. 평소에 난 그렇지 않다 생각했었는데 드라마를 보다 보니 나 자신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분명 있다는 걸 느껴야 했다. 혼자의 부끄러움이었다.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그 어려운 일을 홀로 해내야 하는 한지민 배우의 연기도, 그런 한지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뚝심 있는 김우빈의 연기도 잔잔하게 빛이 났다. 실제 장애인이면서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 중이라는 정은혜라는 배우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었고.
못 보고 건너뛴 회차도 있고 여전히 필요 이상으로 오버하는 듯한 연기도 분명 있었지만,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시청률만큼이나 드라마에 대한 나의 애정이 늘어갔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건 드라마임에도 나와 많이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함' 때문이었고 사람들 사이에 묻혀서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정감 어린 시선을 건네는 따뜻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갱년기의 한 복판을 지나온 건지 마음의 동요도 가라앉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기지개를 켜고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하는 지금, 우리들의 블루가가 함께 했던 봄날들을 생각하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나이까지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평범 그 자체로 살아가는 자신이 견딜 수 없어 세상 다산 얼굴로 울적했던 마음이, 나의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으니까. 드라마의 마지막 자막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들어 주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