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아들을 바라보며
각자의 시간을 풍성하게 살아가자
정신없는 아침 시간을 보내고 글쓰기 모임에 왔다. 방학을 맞은 아들이 집에 왔다가 일이 있어 서울로 다시 떠나는 날, 이젠 어른이 되어 내 앞에 선 아들을 보면 기특하기도 낯설기도, 가끔은 설레기도 한다.
"엄마, 아빠랑 언제 만났어요?"
"응? 아빠랑? 96년도에 만났지. 엄마 1학년때~. 근데 엄마가 대학을 늦게 가서 1학년이었지만 나이는 스물다섯이었지."
아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니 아들이 하는 말,
"같은 과 여자애가 저 좋다고 해서요... 사귀자고.. 저도 좋다고 했어요."
"아, 그래? (잠시 침묵 후) 이름이 뭐야? 사진 있어?"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물어보고 마스크를 써서 눈만 보이는 사진도 함께 봤다. 사진 속에서 좋아하는 여자 친구와 친구들과 눈부신 젊음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들이 밀려온다. 아기 곰돌이 같던 녀석이 언제 저렇게 컸을까? 나라면 누가 사귀자고 했다는 말을 엄마에게 했을까? 절대 안 했겠지..ㅎ
방학 때 학교 친구들 10명 정도가 제주에 숙소를 잡고 놀러 온다더니 그중에 여친도 함께 올 거란다. 친구들 오면 밥 한 끼 해 줄 테니 집에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그날 아들 여자 친구도 보겠네.
TV에서 어떤 교육강사가 아들이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는데 그중에 여자아이가 있었단다. 여자 친구는 아닌데도 여자 사람 친구가 온다는 말에 순간 드는 생각은 '그날 나 뭐 입지?' 였다고 했다. 그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은 격하게 공감이 된다. 그날 뭐 입고 있을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메뉴는 뭘로 할지... 고민 아닌 고민 시작이다.
결혼 22주년이 얼마 전에 지났다. 시간이 이렇게까지 빨리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떤 때는 누가 내 시간을 훔쳐갔나 싶기도 하고 내 나이가 가물가물할 때도 있다. 당연히 아이들이 더 커버린 것도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어제는 아들에게 처음으로 여친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고, 얼마 후면 군대도 갈 거고, 몇 년 후면 졸업도 하고 결혼도 하겠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 그건, 내가 다시 한번 유년기를 거쳐 청소년기, 청년기를 다시 살아보는 것과 같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아이들이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나의 그것보다 순조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겠지. 나는 못해본 것을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아이들에 대한 못난 질투 같은 감정도 분명 있고, 우리 때보다 훨씬 팍팍해진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걸 보는 건 너무 안타깝다.
육아에 서툰 엄마였던 나는 유난히 어린아이들과의 시간이 힘겨웠다. 엄마로서 사는 20년이 빨리 지나 '자유로운 나'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아이들 케어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요즘,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어 물론 좋지만, 아이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하다. 내가 이럴 줄을 누가 알았을까.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때가 힘겨운 순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초롱초롱, 올망졸망 세상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반짝거리던 아이들. 하지만 빛나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나도 같이 그 시간들 안에서 빛나는 순간을 함께 하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들에게 고기를 볶아 아침밥을 차려 주었지만, 정작 아이는 비행기 시간이 촉박해 먹지 못하고 종종거리며 집을 나서야 했다. 깨끗하게 정리된 아들의 빈방을 보는 것이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지만,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다시 집에 올 아이는 아이대로, 여기 제주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는 나대로 각자의 순간순간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