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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Jun 30. 2022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책을 볼 때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그 작가에 대한 뒷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작품이 더 쉽게 이해될 때가 있다. 작가는 작품 속에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녹여내기 때문이다. 그걸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그림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다.


재작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 때엔 베토벤만 주구장창 듣다가 베토벤이라는 사람에게 빠져 거의 덕질을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작년 가을엔 브람스의 음악이 가슴을 파고들었고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던 브람스의 사랑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점점 브람스에 빠져 또 다른 덕질이 시작되고 있다.


로베르트 슈만, 클라라 슈만,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

그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인연과 사랑이야기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그 어느 시나리오 작가도 이런 이야기를 쓰는 건 불가능할 거다. 그런 이야기가 백여 년 전 실화로 존재했다니...


그뿐만이 아니다. 브람스는 물론이고 슈만도 클라라도 한 명 한 명 엄청난 재능과 열정의 소유자였고 한 사람의 이야기만으로도 소설 한 권보다 드라마틱하고 다채로운 소재의 접근이 가능하다.


슈만과 클라라는 클라라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클라라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내에게 바치는 음악도 많다. 슈만의 아내로서만이 아니라 클라라라는 사람 자체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였고 그녀의 인기에 슈만이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스무 살 수줍은 청년 음악가 브람스가 슈만 부부를 찾아가게 되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말수가 적고 독특한 성격의 슈만은 브람스의 연주를 듣자마자 잠시 멈추게 하고 아내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은 천재라고 극찬한다.


슈만의 음악은 음악 전문가가 아닌 내겐 난해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슈만은 다른 음악가들이 인정하는 음악가였다고 한다. 인정받는 천재 음악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음에도 그는 평생을 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40대의 슈만은 라인강 투신 소동을 벌인 뒤, 더 이상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스승의 부인이자 열렬히 사랑하는 클라라의 곁을 지켰던 브람스는 슈만이 죽은 이후로도 클라라를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클라라가 연주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돕는 등 거의 가족처럼 지낸다. 가정일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면서 주변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게 되자 브람스는 클라라로부터 떠나지만 브람스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멀리서 변함없이 그녀를 돌보고 열정의 편지를 보낸다.


브람스보다 14살 연상인 클라라는 1896년 7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바로 클라라에게 달려가지 못했던 브람스는 클라라가 묻히게 될 곳으로 향했는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브람스의 심정은 어땠을까. 세상 가장 비통한 여행이 아니었을까.


클라라가 죽고 나서 바로 이듬해인 1897년 브람스도 독신인 채로 클라라의 곁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그 세 사람에 대해 아는 건 아주 일부이겠지만 그런 드라마의 한 복판을 직접 살아낸 옛사람들의 숨결을, 우리들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 만난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브람스의 음악은 베토벤의 음악을 닮아 있으면서도 어딘지 더 스산한 느낌을 준다. 가을날 여민 옷깃을 파고들어 뼛속까지 스며드는 바람처럼.


여고시절 처음 읽었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의 주인공인 폴과 시몽의 나이 차이는 14살이고(여자가 연상이다) 자신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편지에 시몽은 이렇게 묻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몇년 전 다시 읽긴 했지만, 그 질문이 담긴 편지를 받고 둘이 만나는 것까지만 기억이 난다. 다시 그 책의 첫 장을 넘기며 책 속에 녹아든 브람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이 소설과 어울리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틀어놓고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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