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소식좌란 말이 간간이 나온다.
먹을 것을 아주 적게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튜브와 TV에서 먹방이 유행하면서 난 그런 화면을 보기만 해도
속이 답답하고 거부감이 일었다.
왜 저렇게 먹을 것에 목숨을 거는거지? 저렇게 주구장창 먹는 것만 생각하고
먹는 일만 하는 게 차원낮은 삶이라는 묘한 자기 우월감같은것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해서 항상 비실대는 나 자신이 싫은 마음도 있었다.
성당이나 경조사 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지겹게 듣는 말이 있다.
"왜 이렇게 말랐어?" "살이 더 빠진거야?" "어디 아파?"
하는 사람은 한번의 질문이겠지만 듣는 사람은 수십번도 넘게 똑같은 질문을 들어야 하고
또 딱히 적당한 대답을 찾기도 힘든 질문들이다. 왜 이렇게 말랐는지를 왜 내가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걸까?
"저 그동안 2킬로 빠졌고요, 아픈 데는 없어요."라고 쓰인 피켓이라도 들고다녀야 하나.ㅜ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너 왜 이렇게 살쪘어?", "살이 더 찐거야?"라는 말을 하진 않는다. 그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고 듣는 사람이 상처받게 되는 말이니 웬만해선 그런 말을 대놓고 하진 않는다.
그런데 왜때문에 왜 이렇게 말랐냐는 말, 살이 더 빠졌냐는 말은 쉽게 하는걸까?
살이 쪘든 빠졌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건 엄연한 외모 평가이고 지적인데 말이다.
(내가 들었던 최악의 말은, "OO엄마는 몸은 말랐는데 몸에 비해 손가락은 두껍네요."였다.ㅜ)
그런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항상 살이 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으려 했고 밤엔 야식도 최대한 느끼한걸로 먹으려 했다.
그러다 탈이나면 어렵게 찌워놓은 살이 순식간에 빠져버려 나를 절망케 했다.
언제부턴가 난 나 먹고 싶은 때 먹고 싶은 것만 먹기 시작했다.
살을 찌워야겠다는 생각에 아침저녁으로 재던 체중엔 이젠 더이상 신경을 안 쓴다.
그저 내 몸이 원하는 만큼만 먹고 잘 소화시키면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속이 부대껴서 힘들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그럼에도 가끔씩 체하긴 하지만 그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TV에서 나오는 '소식좌'란 말이 눈에 띄었고 그 말이 내게 왠지모를 안도감을 주었다.
저렇게 적게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나보다 더하네... 하면서 나 역시 소식좌였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가 소식좌였어~! 라는 나의 말에 딸래미가 한마디 한다.
"엄마는 그정도는 아니야. 소식좌는 아니고 소식좌와 중식좌의 중간 정도?" ㅎ
내 건강이 괜찮다면,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서 작은 체중 변화에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다.
마른 몸으로 살아도 소식좌로 살아도 난 얼마든지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