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딸아이의 등굣길, 차로 꽉 찬 학교 앞 길에서 내 앞으로 6대의 차가 끼어들었다. 대형버스까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앞 차에 너무 붙어서 가는 게 싫어 앞차와 간격이 생기니 어김없이 차들이 끼어들기를 하는 거다.
내가 운전면허를 딴 건 40살 무렵이었다. 당시 제주도 이사를 계획하고 있던 터라 남편은 운전 못하는 나를 데리고 운전면허학원에 가서 등록을 시켜주었다. 싫다고 하는 걸 거의 반강제로..ㅜ ‘제주도에선 운전 못하면 못 살아!’라는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운전을 배우는 게 너무 무섭고 싫었다. 4번의 낙방 끝에 겨우 면허증을 손에 쥐었지만 그 후로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연습용으로 산 중고 모닝은 주차장에서 대기만 하다 가끔 배터리가 나가곤 했다.
그렇게 제주로 이사 와서 나는, ‘운전 안 하면 못 사는’ 이곳에서 운전을 안 하면서 1년을 넘게 살았다. 초등 중등 아이들은 아침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오후엔 내가 버스를 타고 학교 근처로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나 택시로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런 나를 남편은 속 터져했고 그 일로 많이 다투기도 했다. 아이들도 불만이 많았음은 물론이고.
지금은 가까운 곳은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 이지만 멀리 가야 할 때면 어김없이 긴장을 한다. 모르는 길에선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 잠깐이지만 몇 번 역주행을 하기도 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가끔 있어서인지 처음 가는 길을 가야 할 땐 너무 긴장이 된다.
오늘아침 딸의 타박을 듣고 나서 생각했다.
내 차 앞으로 차가 자꾸 끼는 게 운전을 하는 게 아직도 익숙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싫지는 않다. 원래가 느긋한 성격이다.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깜빡이기 시작하면 아주 급할 때를 제외하곤 절대 뛰지 않는다. 약속시간엔 웬만하면 일찍 나가있곤 하는데 ‘헐레벌떡’ 무언가를 하는 걸 질색하기 때문이다. ‘경쟁’,‘경주’ 같은 것도 싫어해서 스포츠 경기를 재미있게 보다가도 ‘왜 저렇게 사람들이 기를 쓰고 이기려 하지?’ ‘왜 저런 스포츠를 만들었을까 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그런 나의 성향이, 여유 있고 경쟁보다는 다 함께 가는 걸 좋아하는 '꽤 괜찮은 성격이라 생각해왔지만 요즘들어 자꾸 의문이 생긴다. '그게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나?' 뭐든 느리고 오래 걸리는 내가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못하고 있을 때 남편이나 아이들이 불편을 겪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