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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Jun 30. 2023

6월의 정원에 꽃만 있는 건 아니다

집 지을 곳을 염탐하러 온 딱따구리, 그리고....

어? 저기 좀 봐! 딱따구리가 있네!

주말 오후, 느긋하게 밥을 먹고 치우고 있는데 남편이 감탄에 가까운 소리로 말했다. 얼른 창밖을 내다보니 세상에... 마당 한가운데 있는 벚나무에 딱따구리 한 마리가 앉아서 '딱딱 딱딱'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실 그 소리가 아니었으면 딱따구리인지 잘 몰랐을 거다. 아니, 소리가 아니었다면 나뭇가지가 아닌 나무기둥에 세로로 붙어있듯 앉아 있는 걸 보고 알았을 수도 있겠네.



녀석은 만화에서 보던 알록달록 색깔은 아니었다. 약간 얼룩한 무늬가 있는 갈색톤이었고 부리는 만화에서 보던 그대로 길고 뾰족했다. 나무를 뚫으려는지 계속 입질을 했는데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렸다. 예전에 아파트에 살 때 이웃에서 공사를 하면 나던 드릴 소리와 비슷했는데 소리가 좀 더 끊겨 들리는 것만 달랐다. 그 소리는 꽤 오래 지속되다 멈췄다. 다시 밖을 내다보니 녀석은 그새 날아가고 없었다. 오래 둥지 공사를 할 줄 알고 얼른 사진을 찍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어린 시절 만화에서나 보았던 딱따구리를 우리 집 마당에서 만나다니... 새삼 내가 살고 있는 제주 중산간이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름마저 신비마을...)


중산간 마을에 터를 잡고 10년째 살면서 내가 마당에서 목격했던 (날 놀라게 했던) 생명체는 딱따구리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엔 힘차게 날던 동박새 한 마리가 창문에 쿵 하고 부딪쳐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아기새였는데 나는 연습을 하다 힘조절에 실패한 것 같았다. 귀여운 눈의 힘줄이 터졌는지 피가 묻어나던 작은 몸집을 조심스레 들어 올려 마당 한 편 돌담 아래 묻어주었다.


이사한 지 3년 정도 되었을 땐, 이맘쯤에 듣도 보도 못하던 벌레가 마당에 출현한 적도 있다. 손가락 두세 개 정도 두께에 뭉툭하게 생긴 벌레였는데 짙은 진한 보라색 몸체에 중간에 검은색 굵은 줄무늬가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던 딸내미가 처음 발견하고 들고 있던 음료수컵을 놓치고 기겁을 하며 소리를 치고 난리를 쳤다. 어쩔 줄 모르는 나와 달리 세상 시크한 옆집 동생이 집게를 가져다 그 괴생명체를 집어다 대문 밖에 던지고 왔다. 와서 하는 말.


"언니, 집게로 집었는데도 벌레가 엄청 딱딱한 게 느껴지네요. 꼭 밤송이 같았어요."


그 벌레를 다시 본 건, 딸내미와 TV를 보다 우연히 봤던 사과폰 광고에서였다. 진보라 몸통에 검은 줄무늬... 그 괴생명체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화면 속의 녀석은 사과폰 특유의 감각적인 분위기가 더해져 징그럽다기보단 귀여웠고 힙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당에 출현하는 생명체 중 하드코어의 끝판왕은 뱀이다. 뱀... 뱀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난 끔찍이도 싫다. 난 다리가 아주 많거나 아예 없는 동물이 제일 싫은데 다리가 많은 것들 중 최고봉은 지네이고 다리가 없는 것들 중엔 뱀이다... 제주로 이사 와서 집안으로 침입한 지네를 처음 봤을 땐, 너무 무서워서 눈물까지 났는데 마당에서 처음 뱀을 목격하고는 지네의 체감공포지수가 많이 낮아졌다.


며칠 전, 집 앞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 두고 온 물건이 있어 집에 얼른 가서 가져오려고 대문을 열었는데 그 순간 나는 보고 말았다. 내 발 앞에서 복잡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기다란 형체를. 워낙 통통하고 길이도 긴 지렁이가 많이 보이는 계절이라 (색깔도 똑같....) 순간 큰 지렁이인가 했는데, 분명 뱀이었다. 옅은 갈색에 진한 무늬가 있는 가느다란 뱀은 내 기척에 놀랐는지 바로 수국 이파리가 빽빽한 화단으로 기어들어갔다. 그 이후로 난 마당에 잘 나가지 않고 잡초도 뽑지 못하고 있다.


식물 같은데 아직 관심이 없는 딸아이조차 '엄마, 우리 집이 수목원이야!' 라며 감탄하는 10년 된 마당의 6월은 며칠 단위로 새로운 꽃들이 피어난다. 나뭇잎들도 점점 짙은 초록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언뜻 보면 식물만으로 가득 찬 것 같은 오래된 마당은 가끔은 생각지도 못하던 생명체와 조우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때론 무섭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다채로운 중산간의 자연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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