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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Aug 13. 2023

가늘고 길게, 하지만 멈추지 않기

나만의 피아노 연습법 4

가족들이 모두 볼일이 있어 나가고 혼자 남은 일요일 오후, 나도 어디 나갈 데 없나 생각하다 오늘은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미뤄두었던 책도 보고 어딘가에 쫓기는 기분이 아닌 여유로운 마음으로 피아노 연습도 했다.  방학이라 큰아이가 집에 내려와 있고, 고3인 둘째도 방학이라 왠지 모르게 분주한 나날을 보내면서 피아노연습은 늘 뒷전이었다. 그나마 간간히 피아노를 칠 수 있었던 건, 내가 나름의 규칙으로 정해놓은 10분 피아노연습 덕분이었다.

 

아무리 일이 많은 날도 10분의 시간을 낼 수 없을 만큼 바쁘진 않다. 내 피아노는 안방 구석에 있다. 아이들이 어리고 피아노를 배울 땐 피아노는 거실 한가운데를 위풍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늘 먼지 없는 깨끗한 피아노 앞에 아이가 앉아 레슨을 받거나 연습하는 모습을 보는 건 나의 크나큰 기쁨이었다.


아이들이 크고 피아노를 더 이상 치지 않게 되자 어느 날 안방 한구석으로 옮겨졌다. 피아노를 치는 건 나뿐이었고 그나마 나도 치다 말다를 반복했으니 피아노는 점점 애물단지가 되어 갔다. 매일매일 한 시간을 치려고 결심했다가 그걸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고 10분씩이라도 쳐야겠다고 전략을 바꾼 이후로 나는 예전보다 피아노를 더 많이 연습하고 있다.


피아노가 안방에 있어서 화장실에 가려면 피아노가 눈에 띈다. 피아노가 눈에 들어오면 그냥 앉아서 칠 때가 많다. 자투리 시간에도 잠깐 안방으로 들어가 타이머를 맞추고 연습을 한다. 예를 들어 출근하기 전 씻으러 가는 길에 10분 치기, 약속이 있어 나가기 전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을 때 10분 치기, 강아지 산책을 시키러 나가기 전에 10분 치기, 고구마를 오븐에 넣어놓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10분 치기 등등.

그 시간들은 그냥 흘려버려도 티가 안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부담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은 며칠 만에 연습을 했는데도 며칠 전 보다 곡이 손에 익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아노는 정말이지 징글징글하게 실력이 안 느는 악기이다. 다른 악기를 다뤄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피아노가 가장 어려운 악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거기다 치면 칠수록 더 어려워지는 블랙홀 같은 악기이기도 하다. 그런 악기를 하루 10분씩 연습해서 실력이 늘지 처음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 10분이 쌓이면 그것도 무시할 만한 시간은 결코 아니다. 지금은 더운 여름이고 아이들 방학이라 더 많이 연습은 못하지만 시간 여유가 있는 날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연습을 할 때도 있으니 그때 가속도가 붙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피아노를 쳤다. 시간 여유가 있는 주말이니 30분씩 두 번을 쳤다. 가늘고 길게... 하지만 멈추지 않고 하는 이 일이 나는 참 즐겁다. 연습하는 두 곡 중 덜 어려운 한 곡의 암보를 시작했으니 언제가 되었던 다른 사람 앞에서 연주를 하는 꿈도 꾼다. 여러 사람이 아니라도 좋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 하나를 불러서 좁은 안방이지만 의자 하나를 가져다 앉혀 놓고 그동안 연습한 곡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하우스 음악회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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